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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언론소송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확인한 만큼만… 기사 겸손하게 쓰는게 최선

서정은 기자  2002.08.14 14: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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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소송이 늘어나면서 쟁점과 논의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시민 권리의식의 향상과 사회적 다양성의 반영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취재활동의 위축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권력기관의 소송,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 언론사간 소송의 급증 등 새로운 유형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국민 알권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보도와 관련된 개인과 단체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해야 하는 취재 현장의 고민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 고민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언론소송 문제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언론전담 재판부 판사, 언론사 소속 상근 변호사, 그리고 일선 기자가 만나 해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



오석훈

서울지법 민사합의 25부 판사

99년 수원지방법원 예비판사



김태수

조선일보 상근변호사

현 동양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포르말린 사건 등

언론소송 50여건 수행



김종혁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87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 시경캡 법조팀장

94년 한국기자상 수상

97년 미국 스탠포드대 나이트펠로우



<사회>

정구철 본지 편집국장



<일시>

2002년 7월 31일 기자협회 사무실









시민 권리의식 빠르게 성장, 언론은 ‘황소걸음’

명예훼손 소송사례 교육 등 실질적 대책 절실





사회=최근 몇 년 사이 언론 소송이 상당히 늘고 있는 추세다. 취재 현장에서 직접 기사를 쓰는 처지와 언론사 소속 상근 변호사로서 소송 실무를 지원하는 입장, 또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종혁=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잘못된 기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 판단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권력 기관들이 편집국장이나 사주에게 압력을 가하고 회유를 해 기사를 줄이거나 삭제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최근에는 권력기관들 조차도 법적 공방을 통해 시비를 가리려고 하고 있다.

김태수=상근 변호사로서 기사를 열람하면서 받은 느낌은 기자들이 소송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민감하다 싶으면 항의나 반론이 즉각적으로 제기되고 이중 상당수는 소송으로 연결된다. 더욱이 소송 액수도 고액화 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최근 잇따른 ‘게이트’ 사건 기사를 열람하면서 혼란스러울 때가많았다. 사실과 정확성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좀 더 숙성할 필요가 있는 기사지만 비슷한 내용을 다른 신문에서 펑펑 터뜨리는데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결정적 물증은 없지만 전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면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소송 증가 추세가 기자나 데스크들에게 큰 압박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오석훈=언론전담 재판부 판사로서 평소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절차적인 잘못을 많이 범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확인 과정, 관련 당사자들의 반론을 듣기 위한 노력이 불충분하면 소송에서 보호받을 수 없다.

사회=언론 소송이 왜 늘어나고 있는가. 시민 권리의식의 신장 등 사회환경의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언론의 선정주의, 속보 경쟁, 발표 기사에 의존하는 관행 등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원인에 대해 진단해 달라.

김종혁=사회의 민주화 수준에 비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언론 내부의 측면에서 보면 10여년전만 해도 사회부 경찰기자들이 살인사건 현장에 가서 경찰 몰래 숨진 사람의 앨범을 훔쳐와 그걸 특종했다면서 신문에 내는 일도 많았다. 모든 언론이 다 비슷했다. 그만큼 인권의식도 부족했고 취재과정 자체가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다. 신문이 방송과 속보경쟁을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먼저 보도하는 게 중요했다. 최근 언론 관련 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권리의식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데 언론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차이만큼을 소송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오석훈=시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졌다는 김 기자의 말에 동의한다. 인격권과 명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금전적 보상을 청구하지 않으면서 정정보도만을 요구하는 사건도 상당히 많다. 자신의 명예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수=소송 급증의 원인으로 권리의식 신장과 언론 내부의 취재 관행을 지적하는데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금 다르다. 과거에 비해 일반 시민이 제기하는 소송은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언론 내부에서도 범죄보도의 경우 인권과 명예훼손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유죄로 단정하는 느낌을 주는 거친 제목이나 표현이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최근 언론소송에서 주목할 것은 주요 공직자나 정치인 등 사회 여론주도층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다 강하게 내기 위해 소송의 형식을 빌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과 관련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 소장이나 준비서면을 통해 오가는 내용을 보면 “치우친 생각으로 보도했다” “메카시즘적 공격이다” 등 관점과 성향을 문제삼는 이념적 주장이 많다.

사회=범죄 관련 보도에서 수사기관의 발표를 보도했다가 소송을 당하는 경우 기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실명보도와 익명보도의 기준, 공인에 대한 개념도 혼란스럽다.

김태수=이 문제에 대한 현재 법원의 판결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본다. 범죄 사실을 보도한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사, 기소 등 수사단계에 따른 보도상의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 경우 문제를 삼고 있다. 예를 들어 혐의 내용을 주관적 표현으로 바꿔 “-로 밝혀졌다” “검찰은 공소유지를 자신하고 있다” 등으로 보도할 경우 국민들은 혐의가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언론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구적 표현인데 상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기자들이 사실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확인한 만큼 쓰면 되는데 개인의 상상력을 동원해 윤색하는 경우가 많다.

김종혁=검찰 고위 간부가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을 기사화 했는데 나중에 관련 당사자가 무혐의로 풀려나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있었다. 취재원이 확실했고 보도내용도 공익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소송에서는 언론사가 졌다. 그러나 혐의내용을 공개한 검찰 간부는 괜찮았다. 지금까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된 적은 한번도 없는 걸로 안다. 발언 당사자인 정치인이나 검찰 간부들은 빠져나가고 언론만 문제가 되는 셈인데 억울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석훈=원칙적으로 수사 단계에 있는 피의자의 혐의 사실은 공표하지 않아야 하지만 국민들이 긴급하게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수사기관의 발표를 믿고 보도했는데 나중에 무혐의나 무죄 판결이 난 경우다. 이 때 법원은 수사가 진행된 정도, 취재원의 신뢰성 유무, 공인으로 볼 수있는지 여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언론이 순수하게 공익을 위해 보도했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황이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수사기관이 어떤 측면에서는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 정보를 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언론도 그것이 정확한 정보이고 국민에게 시급하게 알려야 할 내용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공인이 아니면 실명을 쓰지 않는 게 원칙이고, 혐의가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단정적인 표현을 삼가야 한다. 특히 당사자의 반론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권력기관의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과 언론사간 소송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어떻게 봐야 하는가.

김태수=권력기관이나 주요 공직자 소송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잘못된 보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공직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나 정당, 검찰 등 힘을 가진 사람들의 소송 증가가 순수하게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공직자 소송의 특징은 취재원이 그 공직사회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취재원을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사간 소송은 좋다 나쁘다로 나눌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공기인 지면과 화면을 자기방어나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대립되는 주장에 대해 법적 해결을 모색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종혁=권력기관이 제기하는 소송과 일반 시민이 제기하는 소송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권력기관은 스스로 자구능력과 방어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언론보도가 잘못됐을 때 이를 정정하기 위한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시민은 소송 이외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정부나 권력기관이 언론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정보공개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관료나 정치인들은 흔히 진실을 왜곡한다. 따라서 기자들로선 내부 취재원을 통해 핵심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기관이 제기한 소송을 다룰 때 재판부가 권력기관의 폐쇄성으로 인해 기자들의 접근이 막혀있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취재 자체가 어렵다는 현실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오석훈=법원은 일단소송이 제기되면 입증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사는 취재원 보호 입장에서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직자와 관련된 소송의 경우가 그렇다. 취재원 보호도 중요하지만 법관으로 하여금 허위 사실이 아니고 윤색된 부분이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자료는 제공돼야 한다. 언론사간 소송의 경우 법원 내부에서도 기존 명예훼손 법리와 같이 볼 것인가 달리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기존의 명예훼손 법리와는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을 내비친 하급심 판결도 있었다.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지 않은 이상 언론사는 자기들이 보유한 지면과 매체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주장과 반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런 논란의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언론소송에 대해 기사 열람제, 상근 변호사 제도 등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오고 있다. 예방 차원의 대책과 소송 이후의 사후 대책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김종혁=미국 연수 때 대학에서 1년간 언론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명예훼손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포함해 어떻게 하면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당사자들에게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인지를 한 학기 내내 토론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학 신방과에서도 명예훼손 문제를 전문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언론사에 입사해도 이와 관련한 교육이나 전문적인 조언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그저 ‘누가 이번에 얼마 짜리 소송에 걸렸다더라’ 하는 소문이 오가고 ‘어이구 나도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 주먹구구다. 무엇보다 신속성이 아닌 정확성이 언론의 생명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기자 지망생들을 위해 보다 현실성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김태수=소송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기자들이 기사를 겸손하게 써야 한다. 특종 욕심, 또는 기사의 전달력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기사 내용과 반대되는 정황이 있음에도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종을 강조하기 위해 윤색을 한다거나 무리한 추측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소송을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아는 만큼, 확인한 만큼 쓰는 것이다.

오석훈=우리는 아직 외국에 비해 명예훼손 판례가 축적된 지 얼마 안 된다. 축적된 판례가 없다보니 법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준도 사회에서 일어나고있는 많은 사안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된다고 보기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많은 언론소송이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한 판단이 하나씩 내려지다 보면 각종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확립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소송은 많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도 해 볼 수 있다. 또 기자들이 신입으로 들어오면 사회부에서 경찰과 검찰팀을 거치는데 일정 기간 법원을 출입해서 명예훼손과 관련된 각종 사례를 익히고 일반 국민들의 높아진 인권의식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태수=언론사의 용기도 필요하다. 오보나 소송을 너무 두려워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완벽한 사실과 물증만을 갖고 기사를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추측과 의혹제기도 필요하다. 오보에 대한 책임을 지더라도 언론의 양심을 걸고 써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소송은 기업활동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취재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보에 대해 회사가 기업비용으로 인식하고 사전 기사 열람제나 법무보험 가입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기자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종혁=수습 6개월 동안 언론 명예훼손에 대한 전문가 세미나와 여러 가지 사례 스터디를 통해 개괄적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경영진이나 편집국장 등이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줬으면 한다.

정리=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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