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기자상에는 총 27편이 응모해서 8편이 뽑혔다. 대부분 수준작이었으나 일부 공적사항 작성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취재보도 부문의 당선작 3건 중 두 개가 군부를 취재한 기사다. 아직도 군을 취재하기란 다른 분야보다 어렵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다수견해여서 그만큼 상을 받기는 유리했다. 그 어려운 벽을 뚫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 노력에 점수를 주기 마련이다. 공군 전투기가 추락한 원인이 기름 대신 물이 연료로 주입됐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맹찬형 기자외 1명에게 심사위원 전원이 최고점을 주었다. 독자 제보를 취재한 것이지만 정공법으로 대들어 심층 취재했고 보도 후 반향도 매우 컸다. 2위도 기무사 장성이 병역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보도한 SBS 이기성 기자에게 돌아갔다. 그동안 기무사 비리가 종종 보도됐지만 장성급을 찍어서 쓴 적은 없었다. 3위는 북한과 중국의 백두산 일대 국경조약 내용을 최초로 확인한 연합뉴스 정일용 기자가 뽑혔다. 통일보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긍정적으로 평가됐으나 조약원문을 보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원문을 못 구했는지 아니면 외교기밀상의 문제로 자제한 것인지 궁금하다.
4편이 응모한 기획보도 부문에서는 전문직 고소득자의 소득신고 실태를 다룬 CBS 성기명 기자외 4명이 유일하게 수상하게 됐다. 언론이 많이 다룬 문제지만 구체적으로 케이스를 다양하게 잡는 등 공을 들인 점이 평가됐다.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는 8편 중 절반이 수상권에 들어왔으나 최종 표결에서 2편이 뽑혔다. 이중 안산 중앙병원의 관장약이 독성 세척제였다는 경인일보 박승용 기자외 3명의 취재보도는 단연 이 달의 그랑프리 감이었다. 그 하루 뒤 중앙일간지가 병원 관장약에 양잿물이 섞였다는 보도를 내놓아 큰 파문이 일었다. 2위는 대구 MBC의 오태동 기자 외 1명이 보도한 '국정감사를 감사한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면 서울 여의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중앙일간지들도 기자 칼럼이나 박스기사로 비판해 온 내용이지만 TV 카메라의 특성을 잘 살려 리얼한 보도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역 기획보도 부문에서는 청주방송의 자연다큐물'쏘가리생태보고'가 깔끔한 영상구성으로 점수를 땄다. 그리고 전문보도 부문에서는 인천 노래방 화재참사 현장을 카메라로 잡은 인천일보 김기성 기자가 수상자가 됐다. 중부일보 이재교 기자가 언어생활을 소재로 집필하고 있는 교열칼럼도 수상권에 들었으나 심사위원간에 의견이 갈려 아깝게 밀려났다.
2. 기자상 발전 토론회- '용기와 창의성'이 관건
심사가 끝난 후 가진 '기자상 발전을 위한 토론회' 내용은 앞으로 응모자들이 참고할 만한 사항이 많은 것 같다. 내년이면 열돌을 맞는 '이 달의 기자상'이 갈수록 일선 기자들의 욕심꺼리가 돼 가고 있다. 이것이 1년 동안 모아져 결승전을 벌여 선정되는 한국기자상이야말로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 손에 넣어보고 싶어하는 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심사 기준과 선정절차가 권위를 가져야 하겠다는 데 모든 심사위원들이 동의했다.
우선 좀더 구체적이고 명쾌한 기자상 규약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미국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언론 및 저술상인 퓰리처상이나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언론상의 취지는 간단하다. 어떤 언론상이든 그 심사기준을 명료하게 정리한다면 용기와 창의성 개념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공익에의 기여'나 '저널리즘의 수준 향상에 기여한 활동'이라는 식으로 덧붙이고 있다. 용기란 기자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위험부담을 무릅쓰는 정신자세를 뜻한다. 거기엔 반드시 정치권력의 탄압뿐만이 아니라 범죄조직이나 사교집단의 테러위협 같은 것도 포함된다. 요즘 우리에게는 특히 다수의사를 가장한 중우정치적 위압에 비판하는 용기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TV의 박정희 토론에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출연자에 대해 박정희 지지자들이 벌이는 전화협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그런 용기 덕목이 기자정신에 해당한다면 창의성은 현상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시각과 안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기자상 심사에서도 그런 기자정신과 시각이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그 동안 선정작품에 대해서 회원사들의 이의제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특종 중에서도 단순속보성과 땀 냄새가 밴 작품은 구별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심사위원 전원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김일성 사망'이나 '신창원 검거', 또는 최근의 '이근안 자수' 같은 보도에서 어느 경우를 단순속보로격하하느냐는 데있었다. 역시 케이스에 따라 상황을 충분히 분석해서 가려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밖에도 초판이나 첫 방송에 보도됐다가 그후 로비 압력이나 중요치 않다는 판단으로 주요 배달판에 누락되거나 크게 축소된 경우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특별히 불가피한 정황이 없는 한 상 보다도 징계감 아니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엠바고를 깬 특종에 대해서는 언론계 내부 심사위원들이 '취재절차의 정당성'과 '공정한 경쟁'이라는 기준으로 상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었으나 법조계와 학계에서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생각이 달랐다. 엠바고는 언론과 출입처 간의 관계일 뿐이지 일반국민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사안별로 따져야 할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 언론 내부나 출입처의 편의주의식 엠바고에 얽매이지 않고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이 공익에 더 봉사하는 길이라면 다른 차원에서 심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엠바고의 정당성 여부와 그것을 깨고 보도하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도 결국 기자 개개인이 언론의 본령에 비추어 판단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