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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대립' 키우는 조중동의 보도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2004.09.15 10: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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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욱  
 
  ▲ 김영욱  
 
지난 9월 9일 전직 고관, 국회의원, 장성, 장관 등 1천4백여명의 인사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이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는 등 선언문에 드러난 이들의 현실 인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규명 등의 정책을 멈추라는 요구는, 서명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조선, 중앙 및 동아의 이에 대한 두드러진 보도 태도다. 중앙 종합일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조중동이 이를 1면 머릿기사, 중앙과 동아는 1면 탑 5단 기사, 조선은 1면 탑 3단 박스로 다루었고, 이와 함께 종합면 한 면 대부분을 이 기사에 할애했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 ‘경제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해 온 신문들이다. ‘이념과잉’ ‘이데올로기에 매몰’ 등도 이들이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말들이다. 예컨대 같은 날 사설에서 중앙은, 경제난과 민생고로 인한 국민의 비명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보안법 존폐 논란으로 정국이 ‘죽기살기’식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보안법이 진작 폐지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싸움은 ‘보안법’이라는 이름, 즉, 껍데기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현행 보안법의 문제점은 여야 모두 인정하고 있고, 여당도 보안법의 내용을 모두 폐기하자는 입장이 아니다. 정치에서 상징 싸움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사생결단으로 다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다른 신문과 달리 조중동은 ‘시국선언’ 에피소드를 크게 보도했다. 나는 정치권이 민생보다는 상징 싸움과 이념대립에 치중하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신문들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중앙은 간첩 출신이 의문사위 조사관이라는 내용을 보도해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알고 보니 그 조사관은 이미 사면복권된 사람이었다. 9월 10일에도 중앙은 사회면에 “인터넷에 ‘친북의 바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43개의 친북 사이트가 있고 민노당 등 일반사이트에도 북한 찬양 글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억 혹은 그 이상의 인터넷 사이트 중 43개를 어떻게 ‘바다’로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선과 동아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동아는 9월 8일 머릿기사 제목을 “대한민국은 ‘이념적 內戰’”이라고 뽑았다. 결국 자신들이 부추기고는, 그에 대한 반응을 보도하면서 ‘나라가 흔들린다’고 걱정하는 형국이다.



정작 국회에 가보면 많은 의원들과 보좌관, 입법조사관들이 전문가를 부르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등 입법을 위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이 이들 신문에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들이 경제·안보를 앞세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부의 특정 정책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도 든다.



왜 그럴까. 갈등 보도가 주목을 끌기 때문에? 자신들이 대변하는 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염려하는 충정에서?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짐작이 간다. 갈등 보도가 우선은 주목을 끌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독자는 자신의 삶에 중요하지 않는 기사로 채워진 신문을 외면할 것이다. 적어도 돈 내고 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정보 제공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신문을 독자가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신문이 겪고 있는 위기는 독자 시장의 70% 정도를 과점한 3개 신문의 이러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