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잔치에는 의례 덕담이 따른다. “잘 했고 앞으로 더 잘하라”는 풍성한 인사가 넘친다. 그러나 기자협회는 이번 생일만은 그런 인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진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비판, 형식에 퇴화되지 않은 진솔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38살의 나이는 비판과 충고를 약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함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자협회를 위한 쓴소리를 모았다.
‘새로운 존재 이유’ 진지하게 고민하라
자협회 해체하라고 써요!”
기자협회에 바란다는 원고 요청을 받고 막막해서 동료기자에게 “뭘 쓰지?”라고 물었더니 노 타임으로 돌아 온 대답이다. 기자들이 공동으로 추구할 목표도, 함께 도모할 친목도 없어졌지 않느냐는 설명이 뒤따랐다. 요컨대 기자협회의 존립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딴은 그렇다. 기자협회는 1964년 창립이래 구성원들의 단결력을 바탕으로 언론자유수호와 언론민주화 그리고 기자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섬으로써 그 존재이유를 언론계 안팎에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언론개혁의 깃발 아래서 기자들은 더 이상 공동의 지향점을 바라보지 않는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파동을 거치면서 소속 언론사가 처한 입장에 따라 기자들끼리도 생각이 갈리고 갈등의 골이 깊게 패였다. 여기서 출발한 인식의 차는 남북문제, 경제개혁 문제, 노동문제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에 투사돼 더욱 간극을 벌린다. 언론지식인의 의식이 존재 구속성에 여지없이 갇힌 꼴이다.
언론지식인의 소명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사회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론지식인 스스로 개별적 이해관계의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언론지식인의 위기이자 그를 구성원으로 하는 기자협회의 위기이다. 위기는 사회 각 부분에 종사하는 모든 지식인들의 시대적 상황이기도 하지만 사회 갈등의 최전선에서 종군하는 언론지식인의 위기는 한층 심각하다.
기자협회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는 데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 본다. 위기의 출발점은 언론지식인 개개인이지만 그 개개인의 위기의식을 한 데 모아 작은 속삭임을 만들고 이를 에너지 삼아 더 큰 물줄기를 만들어 가는 작업 같은 것 말이다. 그 단초를 여는 비밀은 자기성찰과 진지함, 그리고참여가 아닐까.
기자협회 출범 38주년을 맞아 기자협회 해체의 이유를 운위하는 냉소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이유를 찾고자 하는 의욕이 밀물처럼 언론지식인 사회에 들어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계성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일선지회 의견 수렴·지원 부족
대표적으로 기자협회에서 하는 대다수 사업들이 일선 지회 기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나오지 않아 회원들의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점을 쓴소리의 화두로 들고 싶다. 일선 기자들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사업들이 결정됐다면 참여도는 높을 수밖에 없을 텐데 현재 대부분의 사업에서 회원들의 자발성을 보기는 쉽지 않다. 또 현재 진행되는 대다수 사업에 대해 기자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언제 자신이 참여하기에 적합한 어떤 사업이 진행되는지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대다수가 어렴풋이나마 불만을 갖고 있다.
사실 지난해 열린 국제기자연맹(IFJ) 총회같은 국제행사의 경우 일선기자들의 참여 통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최측만의 축제에 머물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회 진행상 번거로웠겠지만 일선 기자들이 많이 참여토록 배려했다면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되지 않았을까. 기자협회 축구대회처럼 대중성을 확보해 기자협회에서 하는 각종 행사나 사업에 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도록 한다면 향후 기자협회에 대한 일선 회원들의 애정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 하나는 일선 지회에 대한 적극적 지원의식의 부족이다. 각 지회마다 가진 어려움을 보살피는 한편 지회들이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표준 모델을 정립해서 널리 보급해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력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일선 언론사 단위의 지회에서 독자적으로 좋은 사업을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고 시간도 없다는 점 때문이다. 지회 회원이나 회원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연수나 교육, 또는 체험활동의 표준형을 보급하고 이를 지원한다면 회원들의 협회 사랑을 배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쓴소리는 기자협회보의 지나친 비판정신에 관한 것이다. 기자협회나 기자협회보가 불의에 저항한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고 언론인들의 윤리의식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비판기사를 싣는 것은 이해하지만 가끔은 기자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데 앞장선다는 지적이다. 일선기자들이나 언론사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따끔하게꾸짖는 등 애정에서 출발해야 할텐데 마치 기자협회보가 ‘한 건을 터트리는 식’으로 기사를 쓴다는 불만이 골자였다.
기자협회에 대해 더 큰 애정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사들이 비판과 함께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좋은 미담이나 올바른 비판적 태도나 미래 언론의 전망을 개척하고 있는 선도적 언론인을 발굴해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김홍국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지역과의 거리 너무 멀다
편집국의 한 선배는 기자협회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체야. 가입해 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서울×들 들러리 설 필요가 있을까…."
과연 그 정도일까.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몇몇 후배들에게 기자협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뭘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 “기자협회보나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죠" “현 회장은 어느 신문사 출신인가요?"…. 그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초점은 자연스레 하나로 모아지는 듯 했다. 바로 ‘무관심'이었다. 협회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져도 아쉬울 것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문제다. 기자들의 개인주의, 연대의식 부재 등을 탓해야 할지, 협회의 위상추락, 홍보부족 등을 탓해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협회가 회원들의 피부에 와닿는 활동을 해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협회가 수많은 행사, 세미나, 연수 등을 열고 있다지만, 상당수 회원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거나 그 수혜자도 소수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여기에는 서울의 기자들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삐딱(?)하게 보는 지역기자들의 선입견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부 재경 언론사들의 보이지 않는 횡포, 자기과시, 지역언론사 비하 등에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믿기에, 덩달아 기자협회의 정체성마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맞는 부분도 있고, 다소 앞서간 부분도 있다고 본다.)
이럴 때일수록 기협 집행부와 지역 회원, 재경 회원과 지역 회원간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대화만큼 훌륭한 처방전이 어디 있겠는가. 회장의 술주머니가 벌써 탈이 나 있겠지만, 현장에서 기자들과 함께 소주를 기울이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닌가싶다.
창립 48주년을 축하하면서 모두 함께 하는 기협이 됐으면 좋겠다.
박병선 매일신문 문화부 기자
힘겨워도 ‘시대를 여는 일’ 계속해야
우리 사회도 어느덧 많이 발전해서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협회, 협의회, 연합회, 조합 등의 이름으로 단체를 꾸리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그 중, 뭐랄까 가장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것 같은 명칭이 협회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변호사협회, 의사협회 등등처럼. 여기에는 의사협회니 하는 단체들이 공공의 이익을 저버린 투쟁을 하면서 협회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오염시킨 탓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기자협회가 어떤 단체인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언론자유의 횃불을 꿋꿋이 밝혔던 자랑스런 과거가 있는 곳이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시대를 열어가는 건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익히 아는 기자협회는 기꺼이 후자를 감수하려 할 것이다. 단지 지난 10여 년 간 약간 실망스러웠을 뿐이다. 죽 걸어왔던 정도에서 벗어나 정치집단처럼 보이고 친목단체처럼 보였던 측면은 과연 없었는가.
더구나 ‘시대를 열어가는 업종’도 바야흐로 경쟁시대가 됐다. 옛날에는 협회같이 느슨한 형태로 기자들을 모아내는 것만으로도 온갖 고초가 따랐지만 이제는 단체의 백가쟁명 시대. 기자협회의 유력한 경쟁상대만 해도 바로 한 빌딩을 쓰는 언론노조가 있잖은가. 두 단체의 성격이 다르다면 할 말이 없지만 둘 다 기자들을 구성원으로 두고 ‘고객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기자들이 기득권만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집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까탈스런 이 존재들은 뭔가 거창한 것에 항상 목말라 있는 자들이다. 그러니 이 ‘고객’들을 만족시키려면 힘겹더라도 계속 시대를 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그것도 이젠 경쟁상대를 의식해가며 해야 한다는 게 기자협회의 운명으로 사료되오니 그렇게 해 주십사라고 한다면 나의 지나친 바람일까.
이보경 MBC 미디어비평팀 차장
언론개혁에 기협 목소리가 없다
한국 언론의 역사에서 기자협회는 언론의 자유를 대변하는 중요한 조직이었다. 출범 자체가 정부의 언론통제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언론에 조종을 울리는 사건마다 기자협회의 적극적 대응이 있었다.
그러나 기자협회가 언론의 핵심인 기자들을 대변하는 조직으로서 그에 걸맞게 ‘진정한’ 언론자유를 쟁취하기위한 노력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개별 기자가 아니라 조직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근본적 해결을 위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 산파역을 한 기자협회는 스스로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자협회의 활동이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의식화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문시장은 치열한 경쟁 상황에 빠져 있고 이 와중에 기자로서의 좌표는 흔들리고 있다. 기자협회가 이런 기자들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한다면 기자협회의 진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언론의 역사에서 의식화되지 않은 언론인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오류를 범한 사례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언론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 과제로서 편집권의 독립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기자들의 관행에서 비롯되는 각종 폐해 역시 기자들의 조직인 기자협회가 적극 나서야 할 과제이다. 기자실 문제가, 촌지 수수 문제가, 취재 정보의 사적 이용 즉 주식투자 등의 문제가 과연 일회적인 관심으로 끝날 문제인가?
마지막으로 기자협회는 작은 언론의 문제에,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문제에 그리고 작은 언론을 통해 사회적 언론 자유를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매체 중심으로 재편되어온 우리 언론 시장은 사회적으로는 언론 자유의 확대에 역행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