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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지만 따뜻한 '가을 자화상'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 많아요"

이종완·손봉석 기자  2004.09.22 1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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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기자들 선행 ‘훈훈’

-장애아 입양…이웃사랑 실천도





“우리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가족 없이 추석을 맞는 이들 마음만 하겠어요…”



언론시장 침체 분위기 속에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모르게 정기적으로 실시해온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에서부터 평상시 부서 술자리에서의 자발적인 이웃돕기 모금운동까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자들의 모습이 추석 명절의 훈훈함을 더해주고 있다.



전자신문 기자협의회(지회장 박승정)는 최근 백혈병을 앓고 있는 권상우 기자 외아들을 타사인데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도와준 디지털타임스 기자동료들의 사랑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로 대기업들이 펼쳐온 ‘우수리 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우수리’는 매달 급여에서 1천원 미만의 소액을 떼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한다는 것.



전자신문 박승정(IT산업부) 지회장은 “아무리 신문시장이 어렵다 해도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많은 상황”이라며 “기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많아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는 한국편집기자협회 회원들이 가벼운 술자리에서부터 공식적 부서 회식까지 셋 이상만 모이면 술잔을 들기 전 1천원씩 갹출하는 ‘천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천사랑운동’에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국가대표 축구 수석코치인 허정무씨까지 동참의사를 밝혀와 기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각계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몸으로 실천하는 장애인 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8년 10월 사회봉사활동단체가 많이 있음에도 정작 모범을 보여야할 언론사에 봉사단체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 세계일보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발족한 모임이 ‘사랑나눔회’다.



처음 3명으로 시작했던 이들 ‘사랑나눔회’는 그동안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 중증복합장애시설 ‘소망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시설을 찾아 목욕과 청소, 식사 등의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현재 89명의 회원이 꾸준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일보의 ‘사랑나눔회’는 1인당 월 5천원∼10만원까지 후원비로 내고 있으며 급여에서 자발적 의사를 통해 자동 공제되고 있다.



세계일보 ‘사랑나눔’ 회원들은 올 추석명절을 앞두고 소망의 집을 찾아 1백만원 상당 양말을 구입, 자그마한 정성의 선물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랑나눔회’ 홍광표 회장(전산제작단 단장)은 “앞으로도 해야 할 봉사활동이 너무도 많다”며 “추석과 같은 명절이 다가올 때면 더욱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주위의 관심을 촉구했다.



또 ‘사랑나눔회’ 소속 한 기자는 장애인에 대한 봉사활동을 벌이는데 그치지 않고 지난 2001년 2명의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 봉사기관의 장애인 원생 한명을 입양하는 사랑을 실천했다.



이 기자는 입양한 아이에게 입양 소식을 알고 있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종완 기자 korea@journalist.or.kr

 





-신문시장 ‘흔들’… 불안감 확산



-특파원 귀국 않고 ‘새로운 도전’ 선택

-방송·메이저신문으로 이직 놓고 고민





잇따른 부도설과 열악한 업무조건으로 인해 적지 않은 기자들이 ‘잔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신문시장이 흔들리며 직장으로서 안전성도 약해지고 급료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미국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기자는 근무기간이 끝난 후 미국에 눌러 앉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국 부도설이 계속되는 와중에서의 불안한 복귀보다는 새로운 땅에서의 도전을 택한 것이라는 게 동료들의 전언이다.



광화문에서 만난 B기자는 “나룻배를 탈수 있는 정원은 5명인데 10명이 올라탄 셈”이라고 신문시장의 과포화 상태를 비유하고 “지금 부장급 이상 간부들은 좋은 시절도 경험했고 당장 신문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젊은 기자들만큼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서대문에서 만난 C 기자는 “조·중·동 중 한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왔었다”며 “집사람마저 ‘지금 회사는 비전이 없으니 기자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회사를 옮기라’고 충고할 정도”라고 말했다.



신문시장의 어려움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방송기자에 대한 동경도 커지고 있다. 한 스포츠지 국회출입기자는 “오라는 방송국이 있어 고민 중”이라며 “막상 방송으로 옮긴다고 해도 앞으로 거기서 어떤 영역을 취재하라고 맡길지도 확실치 않고 나 자신이 적응이 될지도 알 수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국회출입기자는 “오라는 방송국이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라며 “예전에 입사시험을 볼 때 신문사와 방송국을 놓고 고민하다가 당시는 들어가기가 더 힘들었던 신문을 선택한 것이 지금은 후회된다”고 말했다.



한 지방지 차장급 기자는 “지방지의 경우는 맞벌이를 하지 않을 경우 아이를 ‘국가보조’ 받아서 유치원에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고백하고 “혼자 버는 기자들에겐 어떻게 삶이 유지되는 지를 묻기가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이상으로 신문기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의 목탁’ 혹은 ‘제4부’로 까지 불렸던 자긍심이 상실되고 있는데서 오는 허탈감이다.



한 일선기자는 ‘실미도사건’의 진상을 30여년 만에 밝혀낸 것이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아니라 옛 신문을 꼼꼼히 취재했던 한 방송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구성작가임을 상기시킨 후 “속보에도 물리적인 한계로 뒤지고 있는 신문들이 면을 채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탐사보도나 기획취재도 방송에 밀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한 정부부처 출입기자는 “출입처에서 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미 달라졌다”며 “취재를 하며 특혜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마이너)신문이 긁어 봐야 별거 아니다’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자들의 불안과 불만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직도 배가 부른 소리’라는 일침도 나오고 있다. 한 전직기자는 “기자를 그만 두기 전에는 내가 언론사라는 ‘완전한 철갑’을 두른 것을 몰랐다”며 “지금 다른 업종이나 직업 중에서 기자들보다 상황이 나은 곳이 몇 곳이나 되는지를 먼저 취재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봉석 기자 paulsoh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