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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 바라는 열망 언론이 외면

진보세력과 언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듣는다

정구철 편집국장  2002.08.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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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의 의미 제평가 못받아 아쉬움

“진보정치 확산에 대한 거부감 문제”





권영길 대표는 유일한 언론계 출신 대선 후보다. 민주노동당 내부 인준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단독후보’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확정적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높지 않다. 진보 세력에 대한 외면, 당선 가능성 중심의 경마식 선거 보도에서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디어가 선거의 중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권 대표의 고민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언론노련 초대위원장을 시작으로 업종회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로 이어지는 그의 ‘초대’ 약력이 말해주 듯 ‘새로운 시작’에 익숙한 권 대표이지만 ‘고향’인 언론의 푸대접에 대해서는 고민의 깊이만큼 ‘특별한 해법’은 갖고 있지 못했다.



-6·13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부상했다. 언론의 대접이 좀 달라졌나.

“선거 직후 약간 바뀌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인색하지만 굳게 닫힌 문이 조금 열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반짝 관심’에 그치고 곧 옛날로 돌아갔다. 대선에서 어느 정도의 변수가 될 것이냐는, 흥미나 화제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기사가 간간이 있을 뿐 정책적 활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여전히 찬밥신세다.”

권 대표는 언론이 ‘득표율 8.1%’에 담겨 있는 국민들의 변화 욕구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진단했다. 현실정치 내에서의 개선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가 각축하는 ‘근본적 변화’ 욕구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는데 그것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부상한 것은 언론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보도로 볼 때 기적과 같은 결과다. 1년에 불과 몇 차례, 그것도 단신으로 밖에 기사가 나오지 않는 정당이 8.1%를 얻었다는 것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거 관련 정보의 대부분을 언론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대단한 사건이다.”

-‘운동’의 출발을 언론노련 초대위원장으로 시작했다. 그것이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이어졌다. “언론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세상을 바꾸자”로 확대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간 고민은 없었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주 고향인 언론으로 돌아가서 기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의 생각이 들 때는 더 그랬다. 그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지방선거의 약진이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가. 지방선거와는 달리 대선에서는 ‘사표심리’가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는데.

“얼마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97년에 비해서는 비교가 안되는 성과가 있을 것이다. 97년에는 지역감정에 좌우되는 표 쏠림과 사표심리가 선거판을 좌우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달라진 것은 사표심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상황이나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고려할 때 지역정서 문제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사표심리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민주노동당, 또는 진보정당에 대한 투표는 사표가 되기 때문에 찍지 않았다. 그것이 지방선거에서 바뀌었다. ‘현실적 당선자’는 내지 못하겠지만 ‘정치적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을 찍은 표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내는 토대가 된다는 판단을 유권자들이 하기 시작했다.”

권 대표는 지방선거에 이어 대선에서도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미래’와 ‘희망’의 관점에서 그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지형과 특히 진보세력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인식과 당락 중심의 보도는 희망과 기대로 넘어서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다.

“언론보도의 경향은 여전히 그럴 것이고, 또 국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현실적 변화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나 진보세력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념 공방 차원의 색깔 시비가 아니라 긍정적 의미에서 색깔론을 말하고 싶다.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진 언론이 됐으면 한다는 주문이다. 보수냐 진보냐가 분명해야 한다.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한 상태에서 반대되는 목소리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진보세력의 목소리를 도외시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면서 실제는 적대적 보도를 하는 것은 비겁하다.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라고 분명하게 표명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고 쓰라는 것이다. 그래야 독자나 시청자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권대표는 기자사회가 ‘기득권 계층’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도 진보적 흐름에 둔감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우리 나라의 여론을 좌우하는 매체에 있는 기자들, 주요 신문사나 방송사 기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득권층이다. 진보정치 운동의 확산, 확대가 기득권을 거스르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 정서적 거부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언론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강준만 교수는 “정책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민주노동당도 적극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 반성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기존 정당처럼 ‘기자관리’를 통해서 홍보하는 방식을 민주노동당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돌파구가 없다. 언론이 너무 이중적이다. 정치개혁 문제가 나오면 정책 정당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막상 정책을 들고 가면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답답할 뿐이다.”

이와 관련, 권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과 관련한 사례를 소개했다. “상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상가임대차법 제정을 촉구하는 상인대회를 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일부는 문을 닫고 철시를 했다. 해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국에서도 상인의 철시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기자들도 그 의미에 대해 공감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기자들은 오지 않았다. 사진기자 몇 명이 왔지만 그나마 보도된 곳은 1∼2곳에 불과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노동문제 보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등의 문제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사회적 문제나 민주주의의 문제, 의료보험 등을 얘기하면 활동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렇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신장과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하고 있고 유엔도 그러한 활동은 지극히 정당한 활동이고 확대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선관위가 선거 운동의 중심을 거리에서 미디어로 옮기는 선거개혁안을 내놓았다. 원내 의석을 갖고 있지 못한 민주노동당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데.

“선거운동의 중심이 미디어라고 볼 때민주노동당은 지금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모든 언론이 대선을 3자 구도로 확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권영길이란 후보가 있는지 모르는 국민도 상당수다. 이런 상황에서 TV토론마저 원내교섭단체가 아닌 경우 지지율 10% 이상만 참여하는 것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TV연설이나 광고의 경우도 지지율이 일정 비율을 넘지 않으면 국고에서 비용을 보전해 주지 않는 것으로 안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97년 출마했을 때 TV연설 20분 비용이 2억원이었다. 모금을 했지만 1억원이 모자라 10분밖에 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그때 상황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준이 있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정치적 흐름의 한 경향을 대표하는 후보는 TV토론에 참여시키는 등 알릴 기회를 준다.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 주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 사명이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의 큰 사회적 흐름과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현재의 지지율은 불공정한 게임의 결과다. 그것을 민주노동당에 강요해서는 안된다.”

-언론개혁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다. 88년 언론개혁 운동을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무엇이 달라졌는가.

“언론종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큰 변화가 없다.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에 있어서는 오히려 후퇴했다. 편집이 자본에 종속됐고, 기자들은 하나의 직업인으로 변모했다. 자사이기주의의 늪에 갇혀 있다. 기자이기보다 회사원으로 자기를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현재 언론의 문제는 고쳐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언론개혁이 안되는 일차적 이유는 이런 언론내부의 상황에 있다. 제도의 개혁이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내부 개혁이 먼저, 그리고 더 강하게 진행돼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언론이 소수에 집중돼 있어 약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며 재벌의 시장 진입 제한, 개인의 소유지분 제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입장에 변화는 없는가.

“일부 언론이 언론사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고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말도 안되는 논리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수용되는 것이다. 그런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언론사 소유의 문제나 여론 독과점 체제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권영길 대표는 41년 경남산청에서 태어나 경남고, 서울대를 졸업했다.

67년 대한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해 80년∼87년 서울신문 파리 특파원을 지냈다.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마흔여덟의 나이로 언론운동에 뛰어들어 88년부터 94년까지 언론노련 초대, 2대, 3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95년∼97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이 기간중 97년 정부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해 최초의 정치 총파업을 조직, 이를 무효화 시키기도 했다.

97년 12월 진보세력이 결집한 ‘국민승리 21’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돼 대선에 참여했으며,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90년 언론개혁에 앞장선 공로로 ‘제3회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했다.



대담·정리=정구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