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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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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이라도 지난 30여년 동안 억울하게 쫓겨난 기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1974년 10월 24일 1백80여명의 동아일보 동아방송의 젊은 기자와 PD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목 놓아 외쳤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어느 덧 30주년을 맞았다.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문영희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30년 동안 ‘자유언론실천선언’ 뜻을 기리기 위한 각종 사업과 투쟁을 전개해 오면서 단 하루도 당시 기자들과 PD들이 외쳤던 결의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투위 결성의 도화선이 됐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기 전부터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동아 기자들의 선언은 이미 세 차례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내부에서의 구두선언에 그쳐 그 실효를 발하지는 못했다고 회상했다.
문 위원장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오기까지에는 71년 서울대학생들의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의 ‘동아 기자들에 대한 각성 촉구 결의대회’, 74년 3월 8일 설립된 동아 노동조합의 합법적 언론 자유운동의 분위기 조성 등이 기자와 PD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었던 74년 10월 24일 오전 9시 세종로 동아일보 편집국 내에는 선언이 진행된 30분 동안 선언문이 낭독되면서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한 동아의 젊은 구성원들의 뜨거운 열기가 지금도 느껴진다”며 기자들이 5개월 후 탄압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기까지 투쟁은 대단했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다음해인 75년 3월 18일 강제 축출된 동아의 양심적인 언론인 1백50여명이 함께 모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고 이제 “동아자유언론의 정통성은 동아일보사에 있지 않고 ‘동아투위’에 있다”고 선언한 것이 오늘의 동아투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의 후배들이 일류대학 출신이라는 자만심과 오만감으로 개혁운동에 나몰라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들과 같았던 30대의 나이에 자유언론실천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며 “언젠가는 일제치하의 선배 기자들처럼 후배기자들 또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도를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후배기자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