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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 사상 감정했다"

감정의뢰기관 '마구잡이식' 요청
언론인 "언론자유 침해" 강력 반발

차정인 기자  2004.10.27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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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안문제연구소의 사상 감정 목록에 언론보도 및 칼럼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언론 및 언론인들이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 공안문제연구소의 사상 감정 목록에 언론보도 및 칼럼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언론 및 언론인들이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가 민간 저작물 사상감정은 물론 언론 보도와 칼럼까지 감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언론계 종사자들이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 최기문 경찰청장의 잇따른 ‘공안문제연구소 사상감정 업무 중단’ 발언에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안사범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으로 언론이든 문건이든 가리지 않고 수사자료로 이용하는 행태가 남아있는 한 쉽사리 사라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언론 감정, 연구관 사상이 기준

저작물 감정 기준과 감정 절차에 대해 공안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공식 의뢰된 문건은 의뢰기관을 가리고 연구관에게 전달된다”면서 “선전 선동, 찬양 동조, 문제 없음 등으로 분류하는데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이기 때문에 일부 연구관의 주장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가 밝힌 기준에 따르면 선전선동은 △사회주의 혁명(사상가), 북한의 혁명 투쟁 노선 및 북한의 주체사상을 선전 또는 선동하는 문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혁명 투쟁을 선전선동하는 문건 등으로 분류된다.



찬양동조는 △사회주의 혁명(사상가) 북한의 혁명 투쟁노선 또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찬양 또는 동조하는 문건이고 문제 삼기 어려움은 △두 유형에 속하지 않는 내용의 문건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분류된 감정 의뢰 저작물은 의뢰 기관으로 되돌려지게 되는데 국가보안법과 같은 보안 사범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 자료로 쓰인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감정의뢰 별도 기준도 없어

공안문제연구소에 저작물의 사상 감정을 의뢰하는 기관은 국가정보원, 경찰청, 국군기무사령부 등 크게 세 기관이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의뢰 기준에 대해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북한 및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찬양 선전 선동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문건에 대해 감정을 의뢰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언론과 관련해 사상 감정을 의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방송, 잡지, 신문 할 것 없이 개별 수사관들이 의심이 드는 문건들은 해당부서에 결제를 올려 의뢰 절차를 밟게 된다”면서 “자체적으로 별도의 기준은 마련하고 있지 않지만 주로 국가보안법 적용 여부를 따진다”고 밝혔다.



국군기무사 관계자는 “언론만을 대상으로 감정 의뢰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장병들 중에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문건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예하부대에서도 감정을 의뢰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령부로 창구를 단일화 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언론을 감정 의뢰로 삼았었던 것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연구소 태생부터 비밀스런 내용이 많아 정확한 자료를 입수하기 힘들다”면서 “그러나 내부제보자의 편지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좌익, 용공으로 몰아가는 내용들이 있는 만큼 언론의 적극적인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보법 없으면 마구잡이 감정 못해”

언론이 사상 감정의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정 대상 언론과 언론인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 손석춘 논설위원은 19일 오마이뉴스에 ‘국군기무사령관에게 묻는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손 위원은 “누가 왜 신문칼럼을 ‘사상검증’ 했는가”라며 자신이 쓴 문제의 글을 공개하고 “스스로 거듭 읽어보았지만 과연 어떤 대목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월간 ‘말’지도 11월호에서 “국가보안법의 첨병 공안문제연구소, 월간 ‘말’에 딱지를 떼다”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연구소는 1997년부터 1999년 사이에 월간 ‘말’ 기사 15건에 대해 감정을 실시, 이 가운데 5건에 대해 ‘용공’, 8건에 대해 ‘반정부’라는 판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진보매체에 대한 상시적이고 광범위한 사상 검증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민족뉴스부 정일용 기자는 “이번 사건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이 왜 폐지돼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면서 2001년도에 자신의 칼럼과 기사가 집중적으로 감정된 것에 대해 “북한과 관련한 어떤 글을 쓰더라도 항상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언론 자유의 침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는 “언론인들 중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의 당연한 사명임에도 불구 감정 주체들이 보기에는 좌익이고 용공으로 보인 것”이라면서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마음속으로 감정할 수는 있겠지만 드러내놓고 감정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