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재허가 추천 신청접수를 시작한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방송위원회 재허가 심사는 SBS에 대한 조건부 재허가 추천으로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이나 이에 대한 SBS의 수용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또 방송위와 SBS는 이번 재허가 과정에서 명예실추를 경험해야 했다.
방송위 ‘절충안’으로 재허가
성유보 재허가추천심사위원장은 6일 “SBS에 대해 앞으로 매년 기부금 공제 후 세전이익의 15%를 공익재단에 출연하고, 윤세영 회장이 밝힌 사회환원 미납금 5백10억원 중 3백억원의 납부를 성실히 이행할 것 등의 조건을 붙여 재허가 추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SBS 재허가 추천과 관련된 결정을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상황에서 방송위 6백90억원, SBS 5백10억원으로 주장이 대립해 온 사회환원 미납액은 SBS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앞으로의 사회환원에 대해서는 SBS가 계산한 방식을 차용해 기부금 납부 후 세전수익의 15%를 공익재단에 출연토록 한 ‘절충안’을 내놓은 셈이다.
성유보 위원장은 “SBS가 10%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SBS의 의견일 뿐이고 위원회는 15%를 분명히 의결했다”고 밝혀 앞으로 SBS에게 15%의 사회환원을 부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성 위원장은 SBS가 이에 반발해 소송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허가 당시 윤세영 SBS 사장이 국회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한 발언, 윤 사장과 공보처 장관과의 면담내용 등을 볼 때 허가조건이 분명하다”며 “그러나 15%라는 것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다소 약하지만 ‘부관사항’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법률자문위원회의 다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위는 사회환원 미납금 3백억원에 대해서도 “다 부과해야 마땅하지만 IMF사태 이후 문화관광부와 1기 방송위원회도 SBS가 15%를 환원하는지에 대해 감독해야할 책임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며 “안냈으면 독촉을 해서 받아내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 점을 소홀히 했다”고 SBS측 주장을 수용해준 이유를 밝혔다.
성 위원장은 행정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원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SBS 노조 등 내부반발
방송계는 SBS가 방송위 결정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SBS가 방송위 결정을 따르게 되면 앞으로 순이익의 25% 가량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익재단에 출연해야 될 상황이다. 이는 사회 환원 출연금, 공익재단출연금으로 연간 약 1백50억∼2백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앞으로 3년간 매년 수익의 사회 환원 등에 대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 부담도 지게 됐다.
이런 부담들을 해소하기 위해 SBS가 ‘15%의 공익재단 출연’에 대해 소송을 벌일 경우 치열한 법적 공방은 물론 보수언론, 일부 정치권까지 가세한 ‘전면전’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방송계에서는 SBS가 △민영방송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커지는 것을 막고 △정치권의 청문회나 국정조사 실시요구를 피하기 위해 방송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상과 △이익배당이 감소하게 될 주주들의 불만과 △앞으로 임금삭감 가능성을 우려하는 직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방송위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실제로 SBS노조 비상대책위, 기자협회 비상대책위는 6일 밤 긴급회의를 열고 회사측에 행정소송 제기 등을 요구한 상태다.
SBS는 방송위의 조건부 재허가 결정이 내려진 후 임원회의를 잇달아 열고 있으나 7일 오전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SBS의 한 관계자는 “현재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은 없고 방송위가 발표한 내용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송위의 조건에 대해 내부에서는 ‘지나치다’는 불만이 있는 분위기”라며 “법률적인 검토 등을 끝낸 후에 회사의 공식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SBS 내부에서는 경기침체와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투자부담으로 수익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방송위의 결정은 ‘가혹한 조치’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방송위 위상실추, SBS 명예하락
이번 SBS에 대한 재허가 추천 심사과정은 그동안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방송위의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정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전파라는 국민의 ‘공공재산’을 임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영방송이라도 공익과 공공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선례도 남겼다.
또 방송의 독립성과 소유경영분리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방송위는 이번 심사과정에서 지나친 ‘미루기’와 ‘눈치보기’로 스스로의 위상을 실추 시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방송위는 지상파 재허가 추천문제로 5개월이나 시간을 끌고도 마감시한을 불과 25일 남겨 놓고 가까스로 조건부 재허가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내용이 방송의 공공성을 주장한 언론·시민단체나 SBS 어느 쪽도 선뜻 수긍하기 힘들어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제공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방송위는 또 한나라당 문광위 소속위원들의 항의방문을 받은 후 여론과 정치권에 대해 지나치게 ‘눈치보기’를 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방송학자들은 “앞으로 재허가 심사요건과 절차에 대한 명확한 규정 확립과 방송법을 개정해 현재 ‘정파’외에 대주주교체, 한시적 운영 후 공영화 추진 등 재허가 탈락을 대비한 실질적인 조치를 방송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SBS의 입장에서는 일단 지상파 방송 재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으나 수익의 사회환원 문제 외에도 ‘물은 생명이다’ 캠페인과 관련해 모회사인 ㈜태영의 하수처리장 공사수주에 관한 의혹, 낙하산인사, 방송독립성의 훼손, 대주주 아들의 경영세습 문제 등이 잇달아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며 언론사의 도덕성과 신뢰도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을 반영, 주식시장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LG투자증권 등은 SBS 투자의견을 매수로 상향 조정했으나 한화증권은 SBS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시장수익률’로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도 낮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