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언론재단 이사회에서 박기정 현 이사장이 재선임되면서 촉발된 언론재단 이사장 연임 논란은 ‘현 이사장의 연임반대’라는 의견과 특정인을 이사장 자리에 앉히기 위한 정부의 ‘코드 인사’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불거졌다.
발단
언론재단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3년 임기가 끝나는 이사장과 3명의 상임이사를 선출했다. 그 동안 언론재단 이사장은 정부에서 내정된 인사가 선출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당초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서동구 전 KBS사장 대신 현 박기정 이사장이 재선임되면서 문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박기정 현 이사장과 서동구 전 KBS사장을 놓고 표결을 한 결과 두 후보 모두 6표를 얻었으나 ‘가부 동수일 경우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재단 정관에 따라 임시 의장직을 맡은 노정선 사업이사가 결정권을 행사, 박기정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재선임됐다. 이와 함께 나머지 상임이사 역시 예상과 달리 다른 인물들이 선임됐다.
그러나 이번 이사회 결정을 둘러싸고 사전 담합 의혹과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코드’인사에 대한 반발이라는 주장이 맞서면서 이사장 연임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부와 이사회 간 갈등으로 확산됐다.
경과
언론재단 이사장 선출 문제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언론재단 노조(위원장 정민)는 21일 ‘언론재단 신임 이사장 내정자에게 요구한다’라는 성명을 통해 △공정인사 및 조직관리 △재임 당시 노사갈등에 대한 사과 △재단 재원 확립방안 제시 등을 촉구했다.
노조는 또 박 이사장이 재선임되자 “박기정 현 이사장을 다시 연임시킨 재단 이사회의 결정은 우리의 주장을 철저하게 무시한 결과”라며 “박기정 현 이사장은 스스로 물러나길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어 24일 전국언론노조와 언론인권센터에서도 연임 반대 및 이사회 결의 무효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달리 대한언론인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27일과 28일 각각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박기정 이사장에 대한 문광부의 압력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문화관광부는 23일 이사회 결정 이후 공공연히 박 이사장에 대한 임명거부 방침을 밝히면서 박 이사장의 자진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했으나 박 이사장은 이사회 결정이 민주적·법적 절차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박 이사장과 노정선 사업이사는 28일 오전 간부회의에서 스스로 사퇴하지는 않겠으나 정부가 임명을 거부한다면 임기가 만료되는 31일까지만 정상 근무를 한 뒤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 이사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31일이면 임기가 자동 종료되기 때문에 사퇴란 표현은 적당치 않다”며 “대항조치도 가능하겠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언론재단은 28일 오후 ‘이사장 임명 및 이사 승인 신청서’를 문화관광부에 제출했다.
전망
박 이사장이 재선임되면서 촉발된 이번 언론재단 이사장 문제는 임명 신청에 대한 문화관광부 장관의 거부권이 행사되면 일단 표면 아래로 가라앉게 될 전망이다. 그 동안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간담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박 이사장의 연임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박 이사장의 재임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와 언론계가 새롭게 내놓을 ‘카드’가 누가 될 것인가도 새로운 관심사다. 누가 추천되든 박기정씨도 서동구씨도 아닌 제3의 인물이 이사장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영호 공동대표는 “언론재단이 본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참신하면서도 개혁적이고, 정치적으로도 중립적인 제3의 인물이 새 이사장에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어떤 모습으로 ‘막’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현 정부와 언론계의 입장차 △언론계 인사들 간의 뿌리 깊은 질시와 반목 등을 또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 여진은 상당기간 지속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