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누가 어디로 갔고 또 누가 어디로 옮길 거고 어디서 사람을 구하더라는 얘기가 요즈음 기자들 만나는 자리의 주요한 소재다.
이직의 진앙이 요즘 우리 사회를 휩쓰는 벤처 열풍이다 보니 전처럼 말리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더 늦기 전에 생각 잘했다" "어딜 가도 열심히 하라"는 축하가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자를 관두겠다면 조직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던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오히려 한발 앞서 사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선배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던 과거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기자생활이 목적을 위한 징검다리냐는 비아냥도 한 구석의 얘기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직의 허리가 되는 중견들이다. 이러다가 부서에 데스크와 수습기자만 남는 것 아니냐는 한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부장과 기자 두어 명만 남아 아예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까지 있다. 바람이 확산되면서 중간간부들까지 동요하는 기색이다. 이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이 더욱 부러워진다.
우리는 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을 축하하며 그곳에서 반드시 성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들이 언론 고시라고 불리는 치열한 경쟁의 관문을 뚫고 힘들게 차지한 기자직을 포기한 데는 언론계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가 작용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기자들은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는 연봉제 인사고과 등에 시달리며 자신의 일이 과연 인생을 걸고 도전할 만한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조직과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이 멀다하고 출입처를 옮겨다녀야 하는 취재시스템 때문이다. 위로 갈수록 '좋은 기사'보다는 '줄대기'가 능력이 되는 조직논리도 그렇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중반에 대부분이 대책 없이 용도폐기 되는 현실 앞에 용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에 묻혀 가정이고 주위고 돌아볼 틈도 없이 뛰지만 남는 것이 불확실성뿐이라면 어느 누가 신명이 나겠는가.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 불투명한 장래와 현실적인 계산 사이의 고뇌가 이직 욕구에 불을 당긴 것 아닐까. 무지막지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시작한 기자생활도 장래의 불안 앞에서는 더 이상 매력일 수 없는것이다.
언론은 지식산업이다. 언론사의 경쟁력은 지식을 창출하고 가공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언론은 '사람장사'다. 고급인력 유출은 곧바로 기사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언론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인재들이 언론사의 문을 두드릴 일은 적어진다. 악순환이다.
제호가 아닌 기자이름을 보고 신문을 택하는 것이 결코 다른 나라의 먼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전제로 한다.
지금의 이직 바람은 기자사회가 진정 전문가 집단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의 중요한 시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