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점으로 재구성한 뉴스… 새롭게 펼쳐지는 인천 이야기

[지역 속으로] 독자시점주의 'From You' 기획한 김원진 인천일보 기자

“독자는 뉴스를 받아 읽는 존재여야 할까.”


독자를 위해 귀 기울이고 취재하며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언론이라 해도, 막상 기사를 쓰는 순간, 시점은 언제나 쓰는 사람의 몫으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기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슈, 우선순위, 문단의 순서대로 독자는 뉴스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독자시점주의 ‘From You’ 인터랙티브 시작 화면.

지역이라는 테두리로 묶인 ‘우리 독자’가 생명줄인 지역 언론도 독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했으나 대부분 과거의 방식들이었습니다. 각종 기고, 시민편집위원회 등등 주변적 충고에 가치를 두는 접근이 많았죠.


‘From You’는 여기서 판을 흔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독자에게 편집권을 넘겨, 기사를 어떤 순서로, 어떤 시선으로 볼지 독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쉽게 말해 인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기사를 ‘라면 끓이는 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면을 먼저 넣고, 누군가는 스프를 먼저 넣습니다. 꼬들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푹 퍼진 면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달걀을 반숙으로 할지, 완숙으로 익힐지까지도 모두 다르죠. 이처럼 라면 하나를 끓이는 데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기사는 지금껏 늘 냄비를 쥔 요리사(기자)가 결정해 제공해 왔습니다.

◇인천 독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인천일보 ‘From You’는 인천 독자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방식은 단순합니다. “인천의 10개 군·구 중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연령대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부터 담아보세요.”


세 가지 질문에 답하면, 독자의 삶과 감각에 맞춘 기사 보따리가 열립니다. 같은 주제라도 읽는 순서와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독자 스스로 뉴스를 배열하는 경험, 그것이 ‘From You’의 시작입니다.

From You 특별취재팀. 정치, 경제, 사회, 디지털 등 각자 부서 본업을 소화하면서 이번 기획을 진행했다. 자신과 연이 깊은 지자체를 1~2곳씩 맡아 최대한 광범위한 취재와 동시에 날카로운 분석, 따듯한 향수가 담길 수 있도록 고민했다. 2025년 상반기를 기획과 취재, 작성, 시각화에 쏟았다. (왼쪽 위부터 김원진, 정회진, 곽안나, 이순민, 박해윤, 이아진, 이나라 기자).

예컨대, 중구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40대 독자는 ‘교육’과 ‘원도심 공동화’ 항목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기사 순서는 자연스럽게 80년대생이 기억할 중구의 추억을 시작으로 ‘저출산으로 텅 빈 놀이터’와 ‘상권 노후화’ 이야기가 앞에 배치됩니다. 반면 서구에서 자취 중인 20대 독자는 ‘주거’와 ‘교통’을 먼저 골랐습니다. 그에게는 ‘임대료 상승으로 옮겨 다니는 청년 세입자’와 ‘광역 교통망 확충’ 관련 기사가 첫 화면에 펼쳐집니다. 인천이라는 도시에 함께 살고 있어도 독자마다 기사 읽기의 출발점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From You’가 보여주려는 것은 바로 이 차이. 지역성을 기틀로, 독자가 처한 현실과 관심사가 곧 뉴스의 배열을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인천이라는 도시는 올해로 광역시 체제 30년을 맞았습니다. 또 2026년에는 제물포구, 검단구, 영종구라는 새 이름들이 탄생합니다. 도시를 되짚어 봐야 할 시기에 도시의 이름과 모양새가 변화하는 셈입니다. 흔히 지나쳐온 ‘우리 동네’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는 시도는 단순한 아카이빙을 넘어, ‘독자시점’으로 앞으로 어떤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상상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별취재팀은 8개 구·군을 돌며 경제, 정치, 교육, 교통, 육아까지 14만 자 분량의 기사를 적어냈습니다. ‘인천’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어도 사정이 제각각인 도시들을, 각 구의 결을 살려 카테고리별로 성격을 부여해 기사로 풀어냈습니다.


다만, 독자의 시선과 원하는 양에 맞춰 풀어내기 때문에 읽기엔 딱딱하지 않게 했습니다. 어떤 구는 정서를 담은 데이터로, 다른 구는 정책적 제안이나 다중 인터뷰로, 중구의 경우는 아예 데이터, 취재, 이야기를 섞어 단편 소설로 적어냈습니다.


실험에 대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특히 인천 인연이 있는 독자들은 체험형 기사라는 흥미에 더해 ‘내 얘기가 담겨 있다’는 공감을 전했습니다. 시민편집위원회 위원들 얘기만 봐도 이는 과장이 아니라고 느끼실 겁니다.


“지역 주민만이 알 수 있는 시선과 경험을 기사에 녹여낸 점이 인상 깊었다. 독자 참여형 콘텐츠로서의 실험성과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였고, 인천일보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단순히 구를 행정구역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From You’ 기획은 지난 6월 ‘2025 지역신문 기획취재 제작 지원 공모’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인공지능(AI) 맞춤형 보도 기획으로 독자의 참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생산 방식 실험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받은 400만원은 전부 인터랙티브 페이지 구축에 투입했습니다. 지원이 없었다면 현실화가 어려웠을 만큼 절실한 자금이었습니다.

◇‘시즌 1’ 넘어 순환형 플랫폼 구상
우리는 이 성과를 ‘시즌 1’이라 부릅니다. ‘From You’는 수없이 시도된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넘어선 확장의 신호입니다. 기존 콘텐츠가 정해진 틀 안에서 시청각 효과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이번 기획은 독자의 선택에 따라 구조와 내용이 능동적으로 재조합되는 실험입니다.


앞으로는 독자 경험이 곧 뉴스가 되는 방향으로 넓혀가고자 합니다. 댓글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어떤 카테고리 낙서장에 남긴 경험이 다음 기사에 다시 등장하는 순환형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기사 말미에 “이 주제 더 알고 싶어요”, “현장 같이 가보실래요?”와 같은 버튼을 눌러주면, 그 데이터가 자동으로 축적되어 후속 취재의 우선순위로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입니다.

김원진 인천일보 기자.

‘From You’는 언제든 다른 지역, 다른 주제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더 잘게 쪼개어 읍·면·동 단위까지 내려가거나, 독자 설문을 기반으로 한 AI 맞춤형 뉴스 서비스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취재기를 읽는 분들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 실험이 어떤 방향으로든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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