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물건과 다른 물건이 배달된 꼴이다.”
종합편성채널에 출자한 주주들의 구성이 사업 승인을 전후로 크게 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출자를 약정했던 법인의 절반가량이 출자 금액을 변경하거나 출자 약정을 아예 철회했으며, 승인 신청 당시 없었던 대기업 집단이 신규 출자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채널A의 주주 변동 폭이 가장 컸는데, 상당수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출자여서 의혹을 낳고 있다. 종편의 ‘주주 바꿔치기’를 방통위가 눈감아줬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전국언론노조, 언론인권센터는 5일 이 같은 내용으로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승인 심사 2차 검증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가 인허가 규제기관으로서 의무를 방기했다”고 비판했다.
3개 단체가 참여한 검증TF는 지난달 29일 종편 및 보도채널 신청 사업자의 전체 주주 구성 내용을 공개한데 이어 이번 2차 검증에선 TV조선, JTBC, 채널A 등 3개 종편 사업자를 대상으로 2010년 말 승인 신청 시점부터 2011년 초 승인장 교부 시점까지 달라진 주주 구성 내역을 분석해 발표했다. 검증 대상은 법인주주만 해당하며, 심사 자료 정보공개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한 MBN은 제외됐다.
검증팀은 “승인 신청 사업자는 애초 실제 투자자들이 아닌 임시 주주를 내세워 승인을 받은 뒤 실제 주주로 바꿔치기하고 방통위가 이를 눈감아준 것으로 되어버린 상태”라며 “방통위는 신규 구성 주주를 심사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종편의 사업 승인 신청 당시와 승인 시점의 주주 구성이 판이하게 달랐다”며 “종편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급하게 주주 구성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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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종편 승인심사 검증 TF 2차 기자회견'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 ||
검증팀에 따르면 TV조선, JTBC, 채널A 등 3개 종편 사업자의 승인 신청 당시 총 385개 법인이 총 1조993억7100만원의 출자를 약정했으나, 이 중 46개사(11.95%)가 출자금액을 변경하고 120개사(31.17%)는 총 1606억300만원의 출자 약정을 아예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승인 신청 이후에 새로 출자한 법인도 92개사(14.51%), 1594억원에 달했다.
검증팀을 이끈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승인장을 얻기 위해 자본금을 채우는 과정에서 상당수 주주들이 변경되어 애초 방통위가 승인해준 사업자 내용과 실제로 승인장 교부 이후 법인이 설립됐을 때의 사업자 내용이 굉장히 많이 달랐다”고 밝혔다.
특히 채널A의 주주 변동 폭이 가장 컸다. 채널A의 경우 승인 신청 당시 출자를 약정한 184개의 법인주주 가운데 42.63%에 해당하는 79개사가 전체 금액의 20.72%에 해당하는 808억5300만원의 약정을 철회했다. 전체 자본금의 20%에 달하는 금액이 빠져나간 것으로, TV조선과 JTBC의 배가 넘는 수치다. 채널A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승인장 교부 시점을 한 달 연기하며 43개의 신규 법인주주로부터 915억7300만원이 자금을 모집했는데, 이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출처를 의심받고 있다.
중소기업으로 알려진 이앤티의 경우 총 자본금의 4.98%에 해당하는 203억원을 출자했으나, 2011회계연도 이후의 감사보고서가 확인되지 않는 등 재무상태가 불량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상조 교수는 “금감원 사이트에서 감사보고서도 찾을 수 없는 근거 불명의 회사가, 그것도 2010년 말 자산총액이 97억원에 불과했던 중소기업이 4개월 만에 어떻게 돈을 조달해서 자산총액의 두 배가 넘는 203억원이란 거액을 채널A에 출자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상장회사인 고월 또한 2010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서 156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였으나, 2011년 초 60억원(1.47%)을 채널A에 출자해 의혹을 낳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서 삼일회계법인은 “회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불러일으킬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감사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검증팀은 “이처럼 재무상태가 불량하고 기초적인 회계투명성도 확보되지 않은 회사가 60억원울 출자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채널A에 100억원(2.45%)을 출자한 리앤장실업은 금감원 공시 사이트에서 확인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정체불명의 출자는 또 있다. 검증팀에 따르면 한화생명(구 대한생명) 신탁이 109억9000만원(2.70%)을 채널A에 신규 출자했는데, 그 위탁자가 확인되지 않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신탁 형태로 채널A에 출자한 SK증권은 위탁자가 효성그룹의 ‘노틸러스효성테크’라는 사실을 공개했으나, 한화생명은 위탁자나 수익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신탁을 하면 법률적 소유권은 수탁자에 넘어가지만, 실질적 소유권은 위탁자나 수익자에 있다”며 “위탁자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전주가 자신이 돈 주인임을 밝히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불특정 신탁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며 “누군가 돈 주인이 그 용도를 특정해서 신탁했을 것”이라며 “방통위와 한화는 이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채널A가 왜 이런 근본을 알 수 없는 회사 돈을 끌어와야 했고, 방통위는 왜 이런 것들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는지 세상에 밝혀야 한다”면서 “방통위의 승인 취소 기준에 해당되지 않을진 모르지만 재승인 과정에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집단의 출자가 승인 신청 시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점도 주목된다. KT그룹, 현대그룹, 한화그룹, KCC그룹 등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11개 그룹이 총 924억9000만원을 3개 종편에 출자했다.
특히 KT그룹은 금융계열사인 KT캐피탈을 통해 MBN을 포함한 종편 4사에 각각 20억원씩 출자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등 3개 계열사가 나눠서 JTBC와 채널A에 각각 30억원 씩을 신규 출자했다. 중견기업인 유한양행도 4개 종편 사업자에 10억원씩을 출자했다. 모두 중복 출자이지만 1% 미만으로 방통위 심사 기준에서 감점 대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김상조 교수는 “신규 출자한 대기업들 대부분이 재무적·정치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 그룹들이기 때문에 종편이라는 언론사 주주로서 ‘비빌’ 언덕을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방통위 기준상 주요주주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은 아니지만, 동일인 주주 개념으로 볼 때 주요주주의 출자 내역이 변경된 사례도 확인됐다. JTBC의 경우 한국컴퓨터, 로지시스, 케이씨에스, 한네트, 한국트로닉스가 각 50억원씩 총 250억원을 약정해 동일인 주주 단위로는 공동 2대 주주의 지위에 있었으나, 개별 주주 단위인 방통위 기준에선 어느 하나도 주요주주로 지정되지 않아 이들 5개 계열사 중 3개사가 출자 약정을 철회했음에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역시 JTBC의 주요주주인 S&T중공업(100억원)의 경우 그 계열사인 S&T대우(50억원)가 약정을 철회했는데, 동일인 주주로 보면 주요주주의 출자 변경으로 승인 취소에 해당하나 방통위 규정 하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채널A의 주요주주인 다함이텍의 경우 그 계열사인 다함레저가 50억원의 출자를 철회하고 또 다른 계열사인 다함넷(30억원)이 신규 참여하는 방식으로 ‘계열사 바꿔치기’를 했으나, 역시 문제없이 넘어갔다.
김상조 교수는 “이러한 편법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출자자에 대해 동일인주주 개념으로 그 지분율을 파악하고 중복참여 여부 및 출자 내용 변경 여부를 판단해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도록 방통위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차 검증에 이어 이번 2차 검증에서도 명백한 불법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방통위 심사 기준 상의 규제 공백을 이용한 편법 출자와 부실 심사 실태가 드러나면서 방통위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검증팀은 “방통위가 구성 주주의 50%에 달하는 ‘기타주주’에 관한 문제를 승인 전 심사에서는 평가에 반영했다고 하면서 승인 후에 신규로 진입한 주주에 대해서는 평가조차 하지 않는 불합리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2011년 초 방통위 회의록을 보면 주주 구성의 문제 등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방송법상 법률 위반 사항이 있는지, 납입자본금을 채웠는지만 보고 승인장을 교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추 총장은 “채널A에 109억원을 출자한 한화생명 신탁의 실제 위탁자가 누구인지 방통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고의로 누락한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