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인공지능(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문제가 관심을 끌었다. 정부의 지나친 거미줄 규제를 걷어내기 위한 이 자리에 기업도 참여했는데 그 중 AI 업체 코딧의 정지은 대표가 공공 데이터의 품질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정부에서 AI 학습에 사용하라고 개방한 공공 데이터를 보니 안에 내용이 없는 빈 곽이었다며 무슨 데이터인지 식별이 안 돼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데이터만 있으면 AI 학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데이터에도 쓸 수 있는 것이 있
여성차별 현실 모르는 대통령의 '무지의 권력'
괜히 여자가 남자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여자가 남자를? 상상하기 어려운 접근이라 안타까워요.9월19일 청년 대상 토크콘서트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여자가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것도 괜히 미워하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보기에 오늘날 여성들은 별 이유도 없이 남성을 싫어하고 있으며, 이는 상상도 힘들 만큼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를 농담조로 말한 대통령으로서는 웃자고 한 발언에 반응이 왜 이리 시끄러운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남자를 미워하
열병식과 '철의 장막'
8월15일은 한국과 폴란드 두 나라에 모두 의미 있는 날이다. 한국에선 광복절이고 폴란드에선 국군의 날이다. 폴란드는 1920년 이날, 수도 바르샤바를 가로지르는 비스와강 일대에서 볼셰비키 붉은 군대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를 기념해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8월15일 바르샤바 전투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유럽에서 벌어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마지막 전투였다. 그러나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 해체와 유럽의 냉전 종식 때까지 이날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지 못했다. 1992년이 되어서야 기념일로
밀라노도 파리처럼 되길 바라며
48년 만의 최소 규모 선수단, 금메달 전망 최악. 지난해 파리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기사에 썼던 표현들이다. 필자만 쓴 표현이 아니라는 변명을 뒤로한 채 파리 현지에서 만났던 선수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더 독기가 올랐다며 보란 듯이 16년 만에 최고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턱없이 모자랐던 필자에게 첫 번째 레슨 전망은 함부로 하지 말기, 두 번째 레슨 선수들과 현장을 좀 더 믿기라는 훌륭한 가르침을 줬다.파리 올림픽 취재를 마치면서 한 가지 바랐던 건 밀라노 동계올림픽의 전망은 달랐으면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회 전…
유산보다 빚이 많은 나라
고령화에 성장 둔화까지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의 재정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현재 49% 안팎에서 40년 뒤에는 15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태어나는 세대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1인당 수천만원의 빚을 짊어지게 된다는 얘기다.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세금 확충에는 소극적이고 지출 확대에는 적극적인 과거의 관성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재정 투입은 필요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파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트럼프의 평화상 열망, 이재명 대통령이 기후로 잇는다면
이번에도 나왔다, 노벨평화상 이야기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 국민이 밤새워 지켜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그의 평화상 수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과 대치 상황을 완화하면서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협상의 기술을 쓴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상 집착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임기 내내 전쟁 종식과 중재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인도와 파키스탄 사례까지 들며 내가 아니었으면 파국이었다는 식으로 말해왔다.이는 국내 정치와 표
'케데헌' 열풍이 우리에게 남긴 것
케이팝이 대중문화를 정복한 과정을 설명할 또 다른 기회.21일(현지 시각) 미국 CNN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6월20일 공개된 이 작품은 공개 두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글로벌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영화는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누적 시청 2억회를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에 올랐다. 작품에서 파생된 콘텐츠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Golden은 세계 양대 차트로 불리는…
착한 AI는 없다
초창기 구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모토였다. 2010년 미국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이를 확인시켜 주는 듯한 풍경을 봤다. 20여개 건물로 구성된 구글 캠퍼스 맞은편에 구글이 매입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위로 수십 마리 염소 떼가 몰려다녔다. 구글 직원은 환경보호를 위해 제초제 대신 염소 떼를 풀어놓아 잡초를 제거한다고 알려줬다. 그때 감탄하며 봤던 목가적인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2015년 구글은 모토를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
'여성폭력' 호명하지 않는 정부
단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여성 3명이 살해되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여러 차례 경찰에 스토킹과 폭행 신고를 했음에도,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가 이뤄졌음에도 여성들은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신고 후에도 여성들이 피살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한 시스템 실패를 의미한다. 언론은 피해자 보호명령 도입이 시급하다는 점, 22대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방지 관련 법안 19건이 태평하게 계류 중인 점 등을 일제히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8월 국회에서 교제폭력 입법 공
'더블탭 공격'과 사라진 푸시킨 동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서로 적이지만 상호 간 존중과 연민의 정신이 발현되곤 한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12월24일 벨기에 이푸르 전선의 사건이 대표적 예다. 그날도 영국군과 독일군은 불과 몇십 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독일군 참호에서 전나무 트리가 세워지더니 한 병사가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곧 참호 속 모든 독일군 진영으로, 또 영국군 진영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뒤 양측은 조심스럽게 참호 밖으로 나와 마주 섰다. 병사들 간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