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10일 방송3법 처리를 위한 소위원회 및 전체회의 일정을 취소했다. 이날 과방위를 거쳐 빠르면 오는 12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돌연 일정을 순연한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언론계에서 제기되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여당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송3법과 관련 국민의힘과 최대한 협의해보려 소위와 전체회의를 미뤘다”고 말했다. 애초 여당은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3법을 처리한 뒤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12일 본회의 상정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었다. 다만 본회의 일정이 미뤄지고 방송3법 세부 내용과 관련해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명확한 합의점이 나오지 않으면서 일정을 얼마간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3법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법으로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후 폐기됐다. 이후 지난해 말부터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13건의 방송3법이 잇달아 재발의됐고, 최근 이 법안을 조정하는 과정이 진행됐다. 조정안은 KBS의 경우 이사 수를 15명으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EBS는 13명으로 늘리는 내용으로 국회에서 각각 7명, 6명을 추천토록 했다. 나머지 이사는 학계, 법조계, 시청자위원회, 임직원 등이 추천한다.
다만 이와 관련해 당 안팎에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정안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법안이 졸속 추진되면서다. 민주당 방송·콘텐츠특별위원회에서 총괄기획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소위 단일안으로 추진한다는 법안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사 추천을 정치권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과거엔 암묵적으로 정치권이 이사 선임에 개입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법적 근거 하에 합법적이고 공개적으로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민주당이 정치적 후견주의를 강화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국회 추천 몫을 이사 총원 중 5분의 1로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일안과 관련해선 사장 선임 방식도 문제가 됐다. 이사 선임 문제만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아 사장 선임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물론 EBS 사장의 경우 여전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9일 성명을 내고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EBS 관련 조항은 예외적이고 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EBS지부는 “최근 발의된 개정안 13건 중 12건이 EBS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단일안에선 EBS 사장을 여전히 방통위원장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EBS 사장을 방통위원장이 임명하도록 규정한 구조는 사실상 EBS를 방통위 산하 기관으로 귀속시키는 결과이며, 기존의 입법 논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제도적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조정안의 세부 내용을 계속 조율하고 있다. 이사 총원 중 국회 추천 몫을 좀 더 줄이는 방안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선 법안이 논의된 지 20년 가까이 된 만큼 하루빨리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게 사실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이후 20년 가까이 논의된 내용”이라며 “그런데 아직까지 결실을 못 봤다. 지금 또 논의를 하자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많은 얘기들이 있었고 지금 나온 안은 언론 종사자들과 국회, 시민사회에서 그나마 합의할 수 있는 최저선이라 본다”며 “완성형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일단 작은 걸음이라도 한 발 내딛어 봤으면 한다. 속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