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금 세계를 흔들고 있다. 관세, 전쟁 등 분야를 막론한 트럼프의 ‘말 폭탄’에 증시와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국내 언론의 관심도 그의 입에 쏠렸다. 경제지와 종합지, 방송·통신사를 가리지 않고 트럼프의 이름을 단 연재 기사를 앞다퉈 내놓은 이유다. 이들 연재물은 조회수와 영향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트럼프 1기 ‘예측 불가능성’에 교훈
국내 언론이 ‘남의 나라 대통령’ 트럼프를 주제로 기사 연재를 시작한 배경에는 트럼프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행정부 때의 충격이 있다.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한국은 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 등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출입과 외교·안보 등을 담당했던 윤경환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7월 뉴욕 특파원 부임 이후 ‘트럼프 스톡커(Stocker)’ 연재를 시작한 것도 그때의 영향이다. 윤 기자는 “과거의 경험상 이번에도 트럼프가 세계를 예측 불가한 쪽으로 끌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며 “트럼프 정부만의 독특한 정책과 외교 전략을 떼어 놓고는 뉴스를 해설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1기 시절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한 김수형 SBS 기자(디지털뉴스편집부장)는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트럼프 NOW’를 기획했다. 김 기자는 한국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트럼프 정부와 미국을 이해할 중요한 자료들이 보도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맥락을 가진 기사가 있어야 우리가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고 연재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편집국 전반의 관심사에 오르기도 한다. 동아일보 편집국은 트럼프 1기 때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국제 정세에 관한 관심이 각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1기 집권과 2기 사이 공백이 있었던 탓에 혼란이 극심할 것이란 공감대도 내부에 형성됐다. 그 덕에 이지윤 동아일보 기자는 ‘트럼피디아’ 기사 연재를 결정했을 때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뉴스1에서도 트럼프 당선 직후 “이에 대응할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데 뜻이 모였다. 통신사라는 특징을 살려 워싱턴 기준 일과 시간인 밤과 새벽 사이 있었던 트럼프 정부 소식을 정리해 매일 오전 보도하는 것으로 기사 연재 방향이 정해졌다.
최종일 뉴스1 선임기자가 ‘오늘 트럼프는’ 연재를 시작한 배경이다. 최 기자는 “하루에 열 가지 주제를 넘나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 한국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내용을 핵심으로 내용을 정리한다”며 “가급적 오전에 보도해 독자가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말’보다 ‘맥락’에 초점
이들 연재 기사의 핵심은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넘어선 ‘맥락’ 찾기에 있다. 기존 보도는 발언의 단편적인 내용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연재 기사는 배경과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윤경환 기자는 “가령 한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시장 경쟁력 문제를 전할 때는 비자 문제와 구금 등 현안, 국가별 관세, 현대차 경영진들의 움직임, 산업 현황 데이터 등 파편화돼 있고 분산돼 있던 여러 보도를 하나의 맥락으로 엮는 데 집중하는 편”이라며 “이 일이 한국 경제와 사회, 또 국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기사를 쓴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역시 “일주일에 한 번, 한 국가 정상의 모든 발언을 다루는 만큼 사안별로 많은 데이터가 쌓인다. 그만큼 이 사람이 ‘왜’ 그 말을 했고, 지지층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전체 맥락을 다루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온) 혼란이 갑작스러운 ‘자연재해’가 아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맥락이나 연속성이 존재하는 ‘사건’으로 독자가 이해했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직접 연관은 없더라도 트럼프의 전반적인 외교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다루기도 한다. SBS 뉴스 유튜브 채널에 연재 중인 ‘트럼프 NOW’는 3월 아일랜드 총리가, 5월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욕당했다는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각 영상의 조회수는 14일 기준 125만 회와 715만 회를 넘겼다.
콘텐츠를 기획한 김수형 기자는 “당시 한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접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자는 차원에서 영상을 만들었다”며 “한국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일도 결국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청자들이 잘 알고, 국제 뉴스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낀다”고 설명했다.
◇“실무에 도움”… 독자 피드백에 보람
디지털 연재물인 이들 기사·콘텐츠는 ‘업무 외’ 일로 분류되곤 한다. 그만큼 가외 시간을 써야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볼 때면 성취감을 얻는다고 기자들은 강조했다.
이지윤 기자는 “쉬는 날이 아니면 연재 기사를 쓸 시간 없이 바쁘다”면서도 “평균 조회수가 10만 회를 넘겼다. 대기업 사내연구소 직원, 무역업 종사자 등 여러 독자가 실무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피드백을 주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역시 “본래 업무가 아니기에 연재를 중단해도 문제가 없지만, 쉬는 날에도 연재가 끊기지 않게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김수형 기자는 “정상회담이 있으면 밤새워 생중계하느라 퇴근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제 영상부터 본다는 외교관의 연락을 종종 받는다. 조회수와 반응을 보면 ‘영향력 있는 콘텐츠가 됐다’고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