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다시보기] 언론의 의제설정-기능과 역할의 상관관계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기능’과 ‘역할’이란 말은 일상에서 유사한 의미로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 둘의 의미는 다르다. 기능이 어떤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역할은 특정한 결과를 기대하는 행위주체와 관련된 것이다. 미디어 효과이론 중에서 의제설정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미디어가 어떤 분야나 이슈에 대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 수용자가 어떤 문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언론이 의제설정 역할을 하려는 태도가 너무 강해 정작 의제설정 기능은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미디어 효과 이론은 효과의 크기에 대한 시각을 기준으로 탄환이론, 소효과 이론, 중효과 이론 및 강력 효과 이론 등으로 변화 발전되어 왔다. 미디어 효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과 그 경로를 확인함으로써, 미디어를 견제하고 비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대응하는 데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미디어의 의제설정 가설이 저널리즘 실무와 접속하는 점은, ‘신중성’과 ‘겸허’이다. 어떤 이슈를 강조하거나 같은 이슈를 반복하는 것이 정보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뉴스 선택을 신중하게 만들고 가치 판단에서 겸허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오히려 그 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의제설정을 기능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적극적 역할로 인식하거나 심지어 일종의 권리로 생각하는 태도를 자주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조선일보가 탄핵 판결 직전부터 내보낸 ‘경제 되살려야 한다’는 기획(5월 13일)이나 동아일보가 1면 톱으로 다룬 ‘한국경제 악순환 늪 허우적’(5월 14일), 한겨레가 역시 1면 톱으로 다룬 공정위의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대책에 대한 보도(5월 26일)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의제설정의 ‘기능’과 ‘역할’의 차이는 미세하다. 보도를 위해 사건을 선택하고, 그 중요성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편집을 하는 일들이 모두 넓은 의미의 의제설정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의제설정 역할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편집국이 적극적으로 의제를 제시하는가 아니면 의제설정 기능을 하나의 숙명으로생각하고 보도를 통해 의도하지 않은 의제가 설정되지는 않는가에 대해 노심초사하는가에서 나타난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저널리즘의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로 칼 포퍼의 부정적 공리주의를 원용할 수 있다. 공리주의는 공동체(최대다수)의 이익(최대행복)이 되는 행위를 선하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 나의 행복이 남에게는 불행이 될 수 있다. 경제에서 성장과 분배 중 어떤 것이 최대행복을 가져올지를 명확하게 알기 힘들다. 이에 비해 무엇이 고통인지를 아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배고픔, 추위, 아픔 등이 그런 것이다. 부정적 공리주의는 행복을 준다고 주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을 적시하고 이를 제거하는 행위를 선하다고 본다.

저널리즘 또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제시하기보다는, 독자의 삶에 고통과 어려움을 주는 구체적인 사건과 현상을 보도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의제가 설정된다. 미디어의 의제설정 기능은 중요한 기능이다. 사회적 논의와 관심을 특정 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자 하면, 결과적으로 그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의제설정 효과의 중요한 변수가 미디어의 신뢰성이며, 사람들은 특정 의도를 갖고 말하는 사람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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