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률 9.9%와 종이신문의 생존 전략
종이신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를 말해주는 지표들은 많다. 먼저, 종이신문 가구구독률 감소 추세가 멈추지 않는다. 1993년 63.0%였지만 2017년에는 9.9%로 하락했다(1993·2017언론수용자 의식조사). 연령별로 살펴보면 50대(13.7%)와 60대 이상(16.1%)은 두 자리 수를 기록한 반면 30대(4.0%) 20대(3.9%)는 평균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40대(9.4%)만이 평균값에 근접했다. 둘째, 종이신문 열독률과 열독시간도 감소 추세를 보인다. 2002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열독률은 65.4
위베르 뵈브 메리와언론사 사장의 자격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르몽드의 창간자, 위베르 뵈브-메리가 한 말로 알려진 이 문구는 실은 논객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샤를 페기가 1889년 쓴 Lettre du provincial에 실린 표현이다. 누군가는 뵈르 메리가 이 말을 평생의 신조처럼 여겼다고 하는데, 그건 확실치 않다. 다만 그 역시 진실을 중시했다. 뵈브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널리스트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비록…
‘미투’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
최근의 ‘미투’운동을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은 오보를 내거나 2차 피해를 일으키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간략히 열거해 보자. 1. ‘미투’고발은 본인의 처지에 맞추어 본인 의지로 실행되어야 한다. 언론이 압박해서는 안 된다. 2. 고발자를 찾아 나서고 그 주변을 탐문하는 행위 역시 2차 피해를 불러온다. 3.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진 않지만 사건 장소나 당시의 직업·직무, 피해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신원을 노출시켜선 안 된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사생활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대상이지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
변화…가슴 뛰는 것, 동시에 어려운 것
‘변화’는 어렵다. 필자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개혁을 위해 애쓰며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을 바라볼 때도,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최근 요청을 받고 미디어의 미래에 관해 대화를 나눠본 몇몇 언론사 담당자들을 보며 그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변화가 어려운 건 인간의 본성이 그렇고, 조직의 로직이 그렇기 때문이다. 인간과 조직은 모두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주를 선호한다. 그게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안함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지금 정도도 충분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데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9년 후 다시 시작된’ YTN
최남수 사장 퇴진을 주장하며 YTN 노조가 파업을 한지 벌써 20여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MBC와 KBS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기간에 비하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YTN이 지난 9년여 동안 공정방송을 주장하다 해직된 6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음을 떠올려 보면 20여일이란 숫자 앞엔 ‘9년 후 다시 시작된’이란 수식어가 있는 듯 해 아프고 서글프다. 물론 최남수 사장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없이 임명된 자신을 노조와 구성원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
CBC의 단청
캐나다 CBC방송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100일가량 앞두고 평창에 중계 스튜디오를 꾸렸다. 인터넷에 공개된 스튜디오의 모습은 단아하다. 원목과 대리석 바닥의 간결한 디자인에 동계올림픽 느낌이 물씬 나는 색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적인 감각 뒤의 디테일이다. 푸른 빛이 감도는 창호지와 한국 전통 문창살에 캐나다식 벽난로를 붙였다.이 방송의 올림픽 중계 화면과 그래픽은 연꽃과 한복의 문자 문양, 초롱으로 수놓여 있다. 캐나다 선수가 국기를 들고 웃음 짓는 모습에 한복 문양이 겹쳐지고, 경기 종목을 소개하는 안내문과 선수 소개
‘어떻게’는 ‘왜’ 문제가 되는가
지난 1월24일, 미국에서는 래리 나사르라는 의사가 20여년 간 160여 명이 넘는 십대 여성과 성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최장 175년형을 선고 받았다. 로즈마리 아퀼리나 판사는 래리 나사르의 ‘반성이 담긴 편지’를 휙 던져버리고, 이 편지를 공개하라는 언론의 요청을 거부하며 말한다. “여기엔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당신의 언어로 피해자들이 다시 피해자화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여성 대상 범죄, 특히 성범죄 기사를 보기 전이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언제나 부각되는 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이고, 범
저널리즘: 사실과 진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든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현실이다. 정치적인 요인 때문이든 자본의 압박이 원인이든 지금의 언론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이 신뢰하지 않는 언론의 존재 이유는 없다. 언론이 언론으로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구독률이나 시청률 저하는 그 징표다. 물론 넷플릭스나 SNS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의 증가도 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난히 전체 구독률이나 기존 방송의 시청률이 더 빠르게 저하하고 있다.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레기’라는 표현을 단
망각된 저널리스트의 역할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상처에 펜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알베르 롱드르가 1929년 자신의 저서인 칠흑의 땅(Terre d’ébène)에 남긴 이 문구는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에게 일종의 ‘행동강령’처럼 여겨지고 있다.지난주에는 롱드르의 이 문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1월17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평창 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제목의 기사 때문이었다. 평창올림픽이 다가오는데 KTX가 지나가는 용산역 주변 빈민가
영화 ‘1987’과 저널리스트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1987년과 2017년이 만나는 접점을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의 승리다. 이 승리는 ‘서사의 힘’, ‘스토리텔링’에 힘입은 바가 커 보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 다수는 ‘1987년 시민혁명’의 경험과 ‘2017년 촛불혁명’의 경험을 동일시하며 정권 교체의 열망을 정치적 실행으로 발화시켰다. 여기에 국민 다수에게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억마저 문재인 후보의 ‘서사’에 더해졌다. 다른 후보들로는 이 ‘서사’를 뒤쫓을 아무런 스토리텔링도 갖추지 못했다.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