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지명자와 ‘하나님의 뜻’
미국 연수 중이던 2005년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라이즌과 에릭 리치트블라우가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보국(NSA)이 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불법 도청한다는 정보를 확보한 뒤 무려 15개월만에 기사화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정보를 묵히면 똥 된다’고 할만큼 속보 경쟁이 너무 치열해 특종할 거리도 며칠 만지작거리다보면 낙종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1년 이상 묵혀도 특종이 되는 미국의 언론 환경은 정말 부러웠다. 그런데 최근 탐사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Glenn Gre
미디어 패러다임의 대이동
언론 환경이 급속히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때문이다. 지난달 말 발표된 카카오의 다음커뮤니케이션 인수는 이 같은 환경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그건 PC환경에서 유선 인터넷 플랫폼의 ‘원조 강자’였던 다음이 스마트폰 환경에서 모바일 플랫폼의 ‘신생 강자’로 떠오른 카카오에 인수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모바일이 유선 인터넷을 삼킨 것이고, 미디어 환경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
지방선거 이후의 지역언론
지방 선거도 있고 선거 개표방송도 있는데 정작 우리는 ‘지방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 지방정치는 ‘이번 선거에 누가 출마하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누가 출마했다’로 이어진 뒤 ‘누가 앞선다’로 넘어가 ‘누가 당선됐다’에서 끝난다. 지역주민의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수도권을 포함하는 이야기이다. 지방정치를 구성하는 한 축은 지역 언론이다. 지방정치의 더딘 발전은 지역의 이슈와 전개과정을…
‘기레기 논란’이 주는 경고
기레기. 민망한 말이지만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은어다. 예전에도 가끔 인터넷 댓글에서 보곤 했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좀 더 보편(?)화된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자들조차 스스로를 기레기로 지칭하며 세월호 참사 관련 올바른 보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을 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기레기’로 불리는 핵심 이유인 ‘보도자료 받아쓰기’에 대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장과 괴리된 보도의 원
우리의 반성에서 저항은 시작된다
기성세대의 어처구니없는 욕심으로 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라진 세월호 참사는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답지 못한 언론의 민낯을 보는 것도 비극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들이 보여 준 보도 행태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참사 초기 보험금을 논하는 뛰어난(?) 계산 능력, 현장 취재 정보를 무시하고 정부 보도자료를 베끼는 적응 능력, 오보 양산 능력, 보호견으로서 대통령 비판을 방어하고 찬양하는 능력, 항의하는 유족을 모욕하는 대담함, 그리고 이러고도 후안무치하게 자화자찬하는 뻔뻔함. 이들은 공영방
육사자책(六事自責)이라 했거늘…
이젠 해마다 노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이면 진도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귀한 생명을 떠올리며 눈물짓겠지요.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정권의 침몰이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붕괴이고, 언론의 장례식이라고. 맞습니다. 속속 밝혀지는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 부재, 국민 목숨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체제,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오히려 정권 보호에 열을 올리는 언론…. 온갖 추악한 모습이 다 드러났습니다.이 와중에 박근혜…
세월호 참사와 언론의 자유
“나같은 쓰레기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당연히 당신들 같은 1등, 2등 시민들의 자유는 저절로 쟁취되는 것이다.” 1997년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은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포르노 잡지 ‘허슬러(Hustler)’의 편집자이자 발행인 래리 플린트(72)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대법원에 항소할 때 주장한 말이다. 소송은 미국 국민들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는 제리 포웰이라는 원리주의 계열 기독교 목사가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와 근친상간했다는 내용의 만화광고를 허슬러
떠오르는 ‘큐레이션 저널리즘’
‘큐레이터’가 미디어 분야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큐레이션 저널리즘’은 미디어와 언론인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큐레이터는 원래 큐레이션을 하는 사람, 즉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전시 책임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작품들을 임대하거나 수집해 기획전을 연다. 얼마 전 필자는 ‘큐레이션의 승리’를 목격했다. 그동안 ‘흉물’이다, ‘예술작품’이다 해서 논란이 컸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개관 기획작으로 ‘간송문화전&rsq
재난 현장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
재난 현장을 취재해 보도하는 일은 기자에게 결코 흥미롭지도, 익사이팅하지도 않다. 어두운 밤 차가운 물속에서 떠오른 시신을 조명 아래서 마주하고,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안치소를 돌고 유류품을 뒤지고, 극도로 예민해 있는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 몇 날 며칠 웅크린 채 지내본 사람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무겁고 피하고 싶은 그 자리가 기자의 자리이다. 재난 현장에서 기자는 더 냉정하고 더 민첩해야 한다. 어떤 재난이든 기자가 그 현장에 전문가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재난 현장에서 기자는 더욱 철저하게…
대안언론, 그리고 인터넷 플랫폼 전쟁
얼마 전 국민TV가 ‘뉴스K’를 선보이며 TV라는 이름에 걸맞은 TV방송을 시작했다. 물론 당장은 TV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대안매체로서 내딛는 중요한 한 걸음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혹자는 플랫폼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될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며 그에 대해 어떠한 토를 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기에 그렇다.하지만 같은 이유로 인터넷 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