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기도 언론
요즘 TV에서 유행하는 코미디 중에 ‘같기도’라는 코너가 있다. ‘같기도’란 특정 행동이 해석하기에 따라 이렇게도 보일 수 있고 저렇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응용한 일종의 상황극이다. ‘같기도’는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그때그때 마다 다른 임기응변식 상황논리’를 교묘하게 비판한다. ‘같기도’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선후보로 거명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행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우리를
북한을 보는 언론의 눈
지난 2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HEU/위조지폐/마약… 근거없는 북한 때리기 반성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미국정부와 미국언론의 발표나 논조에 무조건 동조하여 북한을 비방하는 한국 언론의 자세를 개탄하며 그 시정을 요구했다. 한국 언론은 그 성명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어느 정도 반성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언론이 북한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나 언론은 북한이란 나라 자체를 ‘깡패국가
한·미 FTA의 대안
아미티지 보고서와 한·미 FTA 한·미 FTA 협상이 오는 24일 이전에 타결될 것 같다. 19일부터 워싱턴에서 수석대표-통상장관으로 이어지는 최종 고위급 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무역구제와 자동차, 의약품 분야를 맞바꾸는 빅딜, 농산물과 섬유분야의 ‘이익 균형’을 이루겠다는 스몰 딜의 결과는 모두 앞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 불평등성으로 말하자면 병자수호조약이나 소파(외국군지위에 관한 행정협정) 정도가 비견될 수 있을까? 한·미 FTA의 외교안보적 의미는…
파병의 이미지와 현실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돼 살해당한 김선일씨의 죽음은, 명분도 없이 여론을 무시한 채 이라크 파병을 강행한 정부가 불러온 예견된 비극이었다. 그리고 2007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던 윤장호 하사가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숨졌다. 파병을 하는 것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폭력과 살인과 테러, 군비증강 등 우리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피의 보복’을 부르게 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경고를 정부와 국회는 번번이 무시했다. 윤 하사의 죽음은 한국군 파병이 무엇
사이버 규제생산 메커니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률과 이용률을 기록하고 있다. 뉴스 소비는 물론이고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기에 그 어느 곳보다 인터넷 중심 사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전 세계에서 인터넷 활동에 대한 규제법과 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하 정보통신윤리법), 전기통신사업법 , 청소년보호법, 그리고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이하 선거법), 등은 인터넷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규제법이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언론행위에 대한 규제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겨울, 태평로1가 25번지의 두 풍경
언론노조 위원장들의 단식농성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25번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주소다. 이름하여 한국언론회관, 또는 프레스센터는 목하 농성 진행 중이다. 첫 번째 풍경. 2월 12일 오후 두시, 공사가 한창이다. 어쩌면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저 멀리 남도 끝자락, 해남에서도 조선시대에 심었다는 아름다운 노송 앞에 공무원 노조의 천막 사무실이 생겼으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그런 게 생기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랴. 50∼60명의 장년들이 그 천막 안에 모여서 단식을 하고 있다. 한국을 좌지우지하는(이 말은 어폐가…
KTX사태 신문으로 읽기
KTX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벌인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철도공사가 여성들로 구성된 승무원 직제를 만들어 자회사에 간접고용 형식으로 외주화시킴으로써 발생한 이른바 KTX사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노동 현안으로 꼽힌다. KTX사태는 공기업이 여성노동력을 얼마나 손쉽게 꾀어내어 활용하고 있는지, 성차별 노동시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철도공사는 최근 새마을호 승무원들까지 외주화시켰고, 이로 인해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둘러싼 노동권의 문제와 그 ‘기준’의 문제는 더욱 부각
대통령과 언론의 싸움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대통령 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4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줄곧 언론과의 싸움을 벌여왔다. 지난 23일에는 신년연설에서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해 시민과 정부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특권과 반칙의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과제라면서 언론이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언론은 대통령이 실정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군주적 언론관과 무절제한 언사로 위헌적인 신종 언론탄압을 시도하고 있다고…
시사저널과 전인권이 부르는 ‘이메진’
“순망치한”이라고 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강건너 불보듯 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지난 19일 서대문의 맨 길바닥에서 ‘거리문화제’를 보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7년전 이맘 때 나는 목동의 한 공원에서 열린 ‘문화제’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때도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무관심이었다. 장장 9개월을 지속한 CBS의 파업은 무기한 단식을 거치고서야 끝이 났다. 아니, 더 나빠
개헌논쟁과 공론의 상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발의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치권과 언론계에 한차례 풍랑이 일고 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발표를 연상케 할 정도의 기밀 속에서 깜짝 발표가 있었지만,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언론보도를 통해 조사된 국민여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노대통령 정책을 지지해온 일부 진보적 신문들조차 이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노대통령의 ‘개헌의제구축’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파급력이 큰 ‘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