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마피아
이른바 ‘3·1절 골프 파동’이 벌어졌을 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다. 언론은 이 전 총리의 골프 시점과 상대의 부적절성만을 물고 늘어졌을 뿐 골프 자체는 문제삼지 않았다. 이 전 총리가 누군가? 그는 92년부터 환경운동에 몰두해 환경사회정책연구소와 라는 책자를 만들었고, 민주당 환경특위 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그런 맹렬한 활동 덕분에 93년 한국환경기자클럽에서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 94년엔 환경운동연합이 주는 ‘녹색정치인상’을 받지 않았던가. 왜 언론은 이 전 총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고 들면서 그 사실은 전혀…
WBC의 교훈
10년여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방송계에 계시는 많은 분들로부터 방송산업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돌하게도 그분들이 들었던 답은 방송산업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이었었다. 2000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제는 ‘변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으며,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 맞게 미디어 자산관리의 개념을 도입하고 양방향적이고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급변하고 이론적인 얘기려니 하고 애써 위안했던 예견들이 하
총리 골프 파문과 언론의 역할
이른바 삼일절 골프 파문으로 시작된 이해찬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1주일 이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실세 총리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일국의 국무총리를 낙마시킬 만큼,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매우 컸고 국민들의 실망감 역시 깊었다. 부산일보의 특종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은 동아일보를 필두로 중앙일간지와 방송이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사실 지금까지 이해찬 총리가 보여준 국정수행능력은 대통령도 감탄할 만큼 탁월
스크린쿼터와 언론인 습속
“대중은 ‘영화 대박’을 축하했지만, 대박의 주인공들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타건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최근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관련, ‘씨네 21’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한 말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한겨레’에 쓴 글에서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며 톱스타들이 매우 낮은 보수를 받고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한 사례를 몇가지 열거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해다. 내 주장은 대중이 영화인들의 투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대중의 인식과
언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미국의 2면에는 거의 매일 10건 안팎의 정정 기사가 통상 4단 크기로 실린다. 정정 보도의 대부분은 기사 작성이나 편집상의 착오로 잘못 표기된 사람 이름이나 단위, 수치 등을 바로 잡는 것이니 고급정론지로서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상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정정 보도를 내는 점이다.이 신문은 자신들이 바로 잡는 표현상의 문제를 뉘앙스(nuance)란 단어로 표기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줄 수 있어 분명히 한다며 특정 문장의 의미를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기사의 정확성
방송통신 구조개편위원회에 바란다
방송통신 구조개편을 위해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재가동된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지난해 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늦었지만 잘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에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그간에 방송통신 융합의 핵심적인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여러 사안들을 놓고 심각한 갈등과 대립적 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학계와 산업계, 국회 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른바 윔블던 시즌이라고 불리는 2004년 6월 말에 런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영국의 방송정책과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주요 기관을 방문하던 중, DTI(한국의 정보통신부)에서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DCMS(한국의 문화관광부) 관계자도 참석하여 주요 사안에 대해 함께 설명해주었다. 두 부처의 공무원이 자리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화기애애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 분의기 속에서 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방송통신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부처 또는 위원회에서 이러한 상생의 모습, 배려의 문화를 발견하기란
독설의 정치학
독설은 제도적 권력이 없는 아웃사이더의 무기다. 모든 경우에 차분한 대화를 요구하는 건 기존 언로(言路)에서 제도적 권력에 따른 주목의 위계질서를 외면하는 순진한 발상이거나 보수적 음모다. 이게 독설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 노무현 정권에선 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앞 다투어 ‘독설의 향연’에 참여해 왔으니,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우선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간 지배 엘리트 계급은 한통속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민이 보는 앞에선 여야(與野)간 정언(政言)간 제법 싸우는 척 하
말보다는 실천이다
황우석 파동 이후 일부 신문과 방송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그동안의 관련 보도에 대해 자성했다.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반성문을 쓴 언론도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특별히 여론 오도에 큰 몫을 한 주류 언론가운데는 원론적인 수준의 비판론을 제기하거나 아예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각 사의 자성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대부분 언론은 이번 파동을 계기로 또 한 차례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황우석 사태에 책임 큰 언론이란 제목의 한국일보 사설은 이번 파동에서 드러난 우리…
융합미디어 시대와 더블 컨버전스
미디어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21세기의 미디어 산업을 논함에 있어 항상 화두로 등장하는 컨버전스(Convergence)는 놀랍게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된 문자 혁명은 알파벳과 파피루스의 컨버전스를 통해 지식 저장을 가능하게 했고, 뒤이은 인쇄혁명은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의 컨버전스를 통해 15세기 중반부터 정보의 대중적 확산의 기초를 마련한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9세기 중반, 보다 발달된 종이와 증기기관을 이용한 대량 인쇄기술, 그리고 최초의 유선통신 수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