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자기 연출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캐나다 출신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에 따르면,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연극배우일 따름이다. 무대 앞에서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명성을 떨치고 수백 억 원의 국고를 아낌없이 지원받았던 황우석 박사는 커튼 뒤에서 초조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줄기세포 조작에 여념에 없던, 표리부동한 생명공학 전공 배우에 불과했다.마침내 화려했던 연극이 끝났다. ‘상식의 저항’을 무릅쓰고 힘들게 취재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MBC 제작팀의 명예는 2005년을 빛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증오하자
이번 ‘황우석 파동’ 또는 ‘PD수첩 파동’의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애국심에 투철한 우리 언론은 국제관계에서의 국익 관점에서 접근했다. 일리 있는 답이지만, 그걸 가장 큰 교훈으로 삼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이와 유사한 사태의 재발시 우리는 또다시 내부적인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황우석 파동’은 한국사회에 신뢰의 씨가 말랐음을 웅변해 주었다. 그 웅변은 언론매체들 사이의 대리전쟁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도 각 신문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여론 오도하는 주류 언론
지난달 12일 제럴드 섀튼 교수가 황우석 교수와의 결별을 선언한 이후 한 달 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과학적 논란에 대한 접근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여기에는 이른바 `주류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 언론은 네티즌에 영합하는데 급급했을 뿐더러 근거 없는 기사와 자의적 해석을 보태는 등으로 건강한 여론 형성에 오히려 부정적 역할을 했다. 과학연구에 대한 논란은 검증을 통해 밝혀야 하는 것이고, 또 과학은 늘 이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단련되고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대부분 언론은 아예 무시하는 듯했다.특히 에 대해 광고
지상파DMB의 조속한 전국망 확대를 바라며
지난 수주일 동안 진행된 방송통신 융합과 디지털 콘텐츠 산업, 그리고 이동 멀티미디어 방송을 주제로 한 몇 차례의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표준이 단연 화두로 떠올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도하고자 하는”이 맞는 표현이다. 부산 APEC에서 성공적으로 선을 보인 이동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WiBro)와 함께 지난 12월 1일 본 방송에 돌입한 지상파DMB가 바로 대표적인 한국의 기술표준들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들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여유도 없이 컨퍼런스에 참여한 여러 해외 전문가들의…
경인민방 선정, 현상과 본질
경기,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를 선정하기 위한 허가 추천 작업이 마무리됐다. 신청 마감일인 11월 24일, 방송위원회는 모두 5곳의 컨소시엄, 즉 Good TV, KIBS, 나라방송(NBC), 경인열린방송(KTB), TVK의 신청서류를 차례로 접수했다. 지난 해 12월 21일, 투자의향서 미비와 재정건전성 확보방안 미흡 등의 이유로 경인방송(iTV)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지 1년 여 만에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 탄생이 마침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사실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는 우리나
당파성과 개입성
그간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언론의 과도한 당파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파성이 곧잘 개입성과 혼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도한 당파성을 자제해야 한다는 선의의 거리두기 원칙이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신문의 사회적 영향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문제마저 낳고 있다. 한국언론의 주요 특성으로 거론되는 ‘발표 저널리즘’은 한국언론이 사회적 개입에 소극적이며 주로 유력 취재원의 발표에 의존하는 취재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는 주로 취재비용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싸게
일그러진 관계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워싱턴 출장 보고서’와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댓글을 읽으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어쩌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고위 당국자의 품위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서다.설령 일부 사실관계를 다투는 부분이 있다 해도 악의가 없는 중견기자의 글을 ‘소설’로 깍아내리면서 ‘몰상식한 칼럼’이니 애국적이 아니니 하는 조 수석의 글쓰기는 너무 실망스럽고, 이에 댓글을 통해 “그 소설 가만 둘 건가요”라며 대응을 촉구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화답에서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진중함을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 미디어 관련 개별법 발의를 지켜보며
요즘 커뮤니케이션 정책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모이면 의례하는 걱정이 있다. 바로 소년 소녀 가장에 대한 것이다. 왜 뜬금없이 소년소녀 가장이냐고 의아해할 독자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바로 요즘의 방송 통신 융합 환경 하의 디지털 미디어 산업이 철없이 이혼한 부모 밑에서 혼자 살 궁리를 해야 하는 똑똑한 자녀들과 같다는 말이다.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방송 산업의 규제틀과 정보통신부라는 통신과 IT 산업의 규제틀이 하나의 통합적 체제로 융합되는 일이 요원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이들 똑똑한 소년소녀 가장들에 대해 걱정들
업계-학회-언론, 공생의 그늘
에드워드 버나이스가 쓴 라는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호텔의 명성을 높이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경영진들이 홍보 전문가에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한다든지, 훌륭한 요리사를 구한다든지 등을 예상하고 있던 호텔 경영진에게 홍보 전문가가 제시한 묘책은 호텔 개장 3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유지들이 참가한 화려한 연회가 개최되고, 언론이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호텔 측은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다분히 냉소적인…
몰입은 위험하다
나는 과거 수많은 논쟁을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건 “몰입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깨닫기가 쉽지 않다. 몰입은 주로 성실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논쟁의 상대편에 대해 성실하다는 건 미덕이지만, 그건 논쟁이 관객을 전제로 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여기게 만든다.예컨대, 논쟁의 상대편이 진지성도 성실성도 갖추지 않은 채 내 주장에 대해 악의적이거나 편의적인 왜곡을 일삼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 왜곡은 교묘하다. 관객은 잘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몰입하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