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디어시장을 가다 (1)영국

영국 국민은 BBC를 믿는다
이라크 관련 오보 논란 불구, 정부보다 신뢰도 3배나 높아




  2005 한국언론재단 테마취재에서 국내 신문·방송사 미디어담당 기자들이 BBC, TIMES 관계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2005 한국언론재단 테마취재에서 국내 신문·방송사 미디어담당 기자들이 BBC, TIMES 관계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들 조심스런 판형변화…성공적 안착

머독의 영국 진출로 독립성·공정성 논쟁 불러와

‘반박권’ 없는 EU국가 중 하나…시민단체 화두





기자협회보는 지난 9월 4일부터 17일까지 13박 14일 동안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미디어기자 테마취재’를 진행했다. 이번 테마취재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모두 4개국의 미디어 환경을 취재하기 위해 각국 대사관 등의 협조를 얻어 실시됐다. 미디어를 관할하는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주요 언론사를 방문해 해당 국가의 미디어 환경과 현안에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한국의 언론 상황과 비교한 의견 교환도 이루어졌다. 본보는 3회에 걸쳐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네덜란드의 미디어 환경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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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영역에서 영국은 흔히들 저널리즘의 정통 국가로 일컬어진다. 정통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언론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만큼 언론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언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영방송 BBC. BBC는 공정성과 신뢰도에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방송이다. 영국 국민이 정부보다 BBC를 더 신뢰한다고 하는 것만 봐도 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 BBC가 블레어 정부와의 신경전에서 뒤로 밀리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2006년 말 갱신을 앞두고 있는 일종의 방송 허가증에 앞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가 하면 수신료 논쟁에도 휘말리고 있다.



영국의 신문은 시장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키기로 유명하다. 끊임없는 변화는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요일간지 인디펜던트와 타임의 콤팩트 사이즈 판형 변경은 위험 요소를 극복하고 현재 성공적인 안착을 경험하고 있다. 뒤이어 최근에는 가디언도 ‘베를리너판’으로 변형하는 등 영국 신문 시장은 진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시장 논리 중심의 신문은 자본과의 결탁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BBC, 지난해 말 2천9백여명 감원

지난 2003년 5월29일 BBC의 앤드루 길리건 국방전문기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블레어 정부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의혹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블레어 정부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논란은 확산됐으며 제보자로 알려졌던 데이빗 캘리 박사가 조사 과정에서 자살함으로써 미궁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브라이언 허튼 판사가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2004년 1월 28일 허튼 조사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통해 “BBC는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지 않아 오보를 냈으며, 결과적으로 BBC의 보도 제작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허튼보고서는 BBC의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 그렉 다이크 사장의 사임을 야기했고 보고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여론조사는 국민의 BBC에 대한 지지도가 정부보다 3배 높게 나타났다.



기자의 보도 하나로 시작된 사태는 결국 BBC의 위기론으로 부상했고 BBC 마크 톰슨 사장은 2004년 12월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직원 2만8천명 중 약 10%인 2천9백여명을 감원하고 3억2천만 파운드를 절감하는 내용이었다.



BBC는 2006년 일종의 방송 허가증인 황실 칙허장(Royal Chart) 갱신을 앞두고 있다. 10년 단위로 갱신되는 칙허장이 BBC의 존폐를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러나 BBC의 위기론을 부추기면서 경쟁 방송이나 보수 언론들은 수신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향후 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BBC 수신료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국제적인 관심사임에 분명하다.



BBC 정책심임국장 스티븐 휘틀은 “영국 국민의 3분의 1은 BBC를 지지하고 있으며 다른 3분의 1은 수신료를 내지 말자는 입장, 나머지 3분의 1은 중간 위치에 있다”면서 “그러나 영국 국민들의 94%가 BBC를 시청하고 있는데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BBC에만 쓰여질 것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콤팩트판, 긍정적이나 ‘신중’

보통 영국의 4대 주요일간지는 가디언, 데일리텔레그라프, 인디펜던트, 타임 등을 꼽는다.

2003년 가을,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위험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문 판형을 콤팩트로 변경했다. 콤팩트는 이른바 ‘타블로이드’와 같은 사이즈로 영국에서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이미지가 황색 저널리즘의 대명사로 여겨지기 때문에 종합일간지의 경우 콤팩트판이라고 부른다.



뒤이어 2003년 11월 타임지도 판형 변경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타임지는 대판과 콤팩트판 두 개 사이즈를 동시에 발행하다 2004년 8월부터 콤팩트 사이즈만 발행하고 있다. 타임지는 판형 변경 이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타임지의 판형 변경을 주도한 조지 브룩 주말판 편집장은 “콤팩트판의 판매가 늘었다고 해서 광고 수익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면서 “유럽 전역에서 판형 변경을 시도한 신문 가운데 14개만이 광고수익이 약 20% 늘었을 뿐, 나머지 신문은 급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임지의 경우, 주말판 판매가 늘었으며 비즈니스 독자층이 증가했다”며 “판형 변경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역사가 긴 신문사는 사이즈가 바뀌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결코 급하게 진행할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영국의 4대 일간지 중 데일리텔레그라프는 주 독자층이 고 연령층이기 때문에 판형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가장 먼저 판형 변경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가디언지는 최근 들어서 베를린판으로 변경했다.



가디언은 지난 9월 12일자부터 기존 대판사이즈를 ‘베를리너판’(315X470mm)으로 바꾸면서 앨런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은 칼럼을 통해 “타블로이드의 편리와 대판의 감각을 결합해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언론과 자본 결탁 ‘우려’

영국의 미디어는 신문과 방송이 정통 저널리즘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와 달리 최근의 분위기는 자본으로부터 언론이 어떻게 독립할 것이냐는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미디어 자본의 대표격인 루퍼트 머독이 영국으로 진출하면서 신문은 선과 타임지를, 방송은 위성방송인 스카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많은 언론학자와 시민단체는 머독과 블레어 정부간의 암묵적 뒷거래를 비판하고 있지만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을 느끼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시민단체는 CPBF(Campaign for Press and Broadcasting Freedom). 1979년 출범해 현재 전국적으로 약 4백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노조와 기자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재정적으로는 열악한 상태다. 주로 미디어 정책 활동을 하며 2달 주기로 ‘FreePress’라는 미디어비평지를 발행하고 있다.



CPBF가 최근에 주장하는 화두는 반박권. 일종의 정정, 반론 보도 권리라 할 수 있는데 EU 국가 중 영국과 슬로바키아만 이 내용이 없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언론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경우 바로 법원으로 가야 하는데 최소 1백∼2백파운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개인의 반박권은 구사하기 힘들다.



CPBF 사무국장인 배리 화이트는 “전통적으로 영국의 신문시장 경쟁은 치열한데 최근 구독률이 많이 떨어졌으며 여러 계층을 대변하기 보다는 거의 보수 위주로 가고 있다”면서 “탐사보도가 거의 없고 사주의 이익과 충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재단의 패디 콜터 담당관은 “머독의 등장 이후 신문의 경우 선지를 통해 수준을 낮췄고 타임지도 질이 떨어지고 있지만 영국에서 방송은 공정성을 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머독이 위성방송 스카이를 인수했지만 신문과 달리 공정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5년 후에도 영국 방송의 공정성이 확보될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면서 “오프콤의 경우도 저널리즘의 기본은 소비자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것인데도 최소의 규제를 내세우면서 상업주의를 부추기는 등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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