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맥· 산수갑산'은 틀린말
엄민용 기자의 '말글 산책' <6>
스포츠칸 엄민용 기자 margeul@khan.co.kr | 입력
2006.05.12 15: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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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민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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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방식은 다른데 석현이 카사노바에 가깝다면 일한은 여자를 전혀 모르는 쑥맥이다.”
“여자에게 눈 한번 못 마주치는 쑥맥 노총각 농사꾼으로 열연한….”
최근 일간지들에 실린 표현이다.
언뜻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 문장 중의 ‘쑥맥’은 바른말이 아니다.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말”은 ‘숙맥’이다.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인데, 숙맥불변은 글자 그대로 “콩(菽)과 보리(麥)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콩인지 보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과 ‘숙맥’을 ‘쑥맥’으로 쓰는 사람 중 누가 더 어리석을까? 이럴 때 쓰는 말이 ‘도찐 개찐’이다.
그런데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도찐 개찐’이나 ‘도낀 개낀’ 역시 바른말이 아니다. ‘도긴 개긴’으로 써야 한다. 여기서 ‘긴’은 “윷놀이에서 자기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길의 거리”를 뜻한다.
‘숙맥불변’을 ‘숙맥’으로 쓰는 예에서 보듯이, 넉 자의 한자성어를 두 자로 줄여 쓰는 말이 더러 있다. “어떤 일의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이르는 말”인 ‘십상’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놀다가는 시험에 떨어지기 십상이다”의 ‘십상’ 말이다.
‘십상(十常)’은 십중팔구(十中八九)와 같은 뜻의 말 ‘십상팔구(十常八九)’의 준말이다. 한데 이 십상을 ‘쉽상’으로 쓰는 일이 더러 있다. 우리말 ‘쉽다’에서 온 말로 잘못 알고 그리 쓰는 듯하다.
‘삼수갑산’도 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이다. “어떤 결심을 단단히 하는 문맥에서, 무릅쓰거나 각오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강조하며 이르는 말”로 흔히 ‘산수갑산’을 쓴다. ‘산수갑산’이 널리 쓰이는 것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산 넘고 물 건너 죽을 고생하며 이곳에 왔다’ 등의 표현에서처럼 우리 생활에서 산(山)과 물(水)은 고생을 나타낸다.
‘산과 물=고생’이 뇌리에 박힌 까닭에 ‘산수갑산’을 별 의심 없이 바른말로 여겨 그리 쓰는 듯싶다.
그러나 ‘산수갑산’은 ‘삼수갑산’으로 써야 한다. 여기서 ‘삼수’와 ‘갑산’은 함경남도의 땅이름이다. 이들 두 지방은 조선시대 귀양지 중 하나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척박한 곳이다. 길이 험해 사람이 드나들기 어렵고, 풍토병이 극성을 부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