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파괴하는 프로메테우스
<내가 본 리영희 선생>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입력
2006.05.24 11: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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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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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날지 난 다 알고 있다. 그 어떤 고통도 내가 예기치 않았던 것은 없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운명이 내게 보내준 그것을 되도록 가볍게 견뎌 보아야지”
-아이스킬로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분단시대의 지성적인 냉골에다 처음으로 불을 지핀, 어떤 찬사도 모자랄 리영희 선생의 첫 인상을 고 박현채 선생은 ‘말갈족의 추장’ 같다고 갈파했다. 민족사의 자존심이었던 발해 건국의 주축으로 돌화살과 독화살을 사용했던 그들이 잃어버린 조상의 땅을 되찾았던 프로메테우스였다면, 리영희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드리워진 일체의 사슬을 끊고자 고통을 감내했던 프로메테우스란 점에서 그리 욕된 말은 아닐 성 싶다.
위의 대목은 광주MBC에서 ‘대화’를 중심한 대담을 마친 뒤의 소회를 쓴 글의 첫머리이다.
선생님을 뵈올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경이로움을 나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인간상’에서 찾곤 한다. 우상이 지배하는 분단시대의 가치체계 속에서 그걸 파괴하려는 투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지성의 예봉은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부쳐진 별명 중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건 우리 시대의 ‘사상의 스승’이었는데, 이번 기자협회가 제정한 제1회 ‘기자의 혼’상 수상 기사를 쓴 오마이뉴스의 김솔지 기자는 그 제목으로 ‘리영희 선생님, 정말 섹시하세요’로 붙였고, 그런 평가에 선생은 적이 즐거워하는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의아할 것도 없다. 댓글에 보니 그 해답이 나온다. “선생님 항상 그렇게 웃으세요. 정말 섹시! 하답니다. 섹시하다는 것이 별 건가요?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머리 뒤에서 후광이 번쩍여봐라 내가 굴하나!’ 이런 자세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는 구절이 시선을 끈다. ‘시대의 별’이란 명칭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그는 이제 ‘스승’이나 ‘별’의 차원을 넘어 ‘섹시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우리 앞에 재등장한다. 무엇이든 자기 앞에 나타나는 모든 대상에 대하여 끝없이 추궁하여 그 가려진 신비를 벗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원숙한 한국적 파우스트 박사는 선입견을 가진 반대파들의 주장처럼 도식적인 회색의 이론가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성이 살아 펄떡이는 녹색의 실천가이자 인간미 넘치는 유머리스트이다.
그는 엄숙과 웃음과 치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엄숙이 그의 역사인식이라면 웃음은 일상적인 인생관이요, 치기는 그리스 신들이 지닌 원초적인 본능을 연상케 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성이다.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그는 이제 우리 시대의 인간다운 삶의 한 전형으로 표본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