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찜'에는 '아구'가 없다
엄민용 기자의 '말글 산책' <8>
스포츠칸 엄민용 기자 margeul@khan.co.kr | 입력
2006.05.26 17: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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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민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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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자, 퇴근하다 아구찜에 소주 한잔 어때?”
듣기만 해도 살 떠는 소리다. 행복함이 밀려들면서 입에 침부터 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구찜은 먹으려야 먹을 수가 없다. 오대양 그 너른 바다에 ‘아구’라는 물고기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열이면 열 모두가 ‘아구탕’과 ‘아구찜’을 찾는다. 음식점들도 백이면 백 죄다 ‘아구탕’ ‘아구찜’이라 적어 놓고 있다.
아마 ‘입’이 유난히 큰 그 물고기의 특징 때문에 한자말 ‘입 구(口)’를 떠올려 ‘아구’라고 쓰는 듯하다. 그러나 ‘아구’라 불리는 물고기의 바른 이름은 ‘아귀’다. ‘아귀’는 “입 또는 구멍”을 일컫는 ‘악’에 ‘위’가 더해져 ‘악위’로 쓰던 것인데, 그 ‘악위’가 ‘아귀’로 불리다가 그대로 굳어진 말이다.
이렇듯 음식점에 가면 차림표 등에 우리말이 잘못 적혀 있는 것이 많다. ‘차돌박이’도 그중 하나다.
소의 가슴에 붙은 살과 뼈를 총칭해 ‘양지머리’라 한다. 이 양지머리 복판에 붙은 ‘희고 단단하며 기름진 고기’는 맛이 일품이어서 많은 이들이 즐겨 먹는다. 한데 이 고기를 파는 집들의 차림표를 보면 ‘차돌바기’ ‘차돌배기’ ‘차돌박이’ 등 그 표기가 엿장수, 아니 식당주인 마음대로다.
‘길다’ ‘높다’ ‘다듬다’ ‘먹다’ ‘벌다’ ‘살다’ 따위의 명사형은 ‘길이’ ‘높이’ ‘다듬이’ ‘먹이’ ‘(돈)벌이’ ‘(살림)살이’다. 따라서 ‘박다’의 명사형은 ‘박이’이고, 마치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것이 박혀 있는 고기는 ‘차돌박이’가 맞는다. “얼굴이나 몸에 큰 점이 있는 사람이나 짐승”도 ‘점박이’이지, ‘점배기’가 아니다.
또 ‘된장찌게’ ‘김치찌게’ ‘부대찌게’ 등처럼 ‘-찌게’라고 써 놓은 집도 많은데, 이때의 ‘-찌게’는 ‘-찌개’가 바른말이다. ‘-게’와 ‘-개’는 모두 동사 어간에 붙어서 명사를 만드는 뒷가지인데, 우리말에서 ‘-게’가 붙는 것은 ‘지게’ ‘집게’ 등 몇 개 되지 않는다.
‘걸개(그림)’ ‘깔개’ ‘덮개’ ‘뜨개(질)’ ‘마개’ ‘쓰개(치마)’ ‘얼개’ ‘지우개’ ‘찌개’ 등 열에 아홉은 ‘-개’가 붙는다.
이밖에 포장마차 등에서 주로 파는 ‘꼼장어’나 ‘쭈꾸미’도 바른말이 아니다. ‘꼼장어’는 ‘먹장어’ 또는 ‘갯장어’가 바른말이다. ‘쭈꾸미’는 ‘주꾸미’를 아무 까닭 없이 된소리로 적은 것이다.
이렇듯 자기네가 팔고 있는 음식 이름 하나 제대로 써 놓지 못한 음식점에는 가지 말자. 있지도 않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니 맛이 있을 리 없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 집에 가면 주인에게 잘못을 일러 주자.
그리고 웃는 얼굴로 “아저씨, 차림표를 바른말로 써놓지 않으면 이 집 음식 안 먹을 거예요”라고 협박(?)하자. 그래야 우리말글이 곧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