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달은 뜨지 않는다

엄민용 기자의 '말글산책' <9>




  엄민용 기자  
 
  ▲ 엄민용 기자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초생달 위에 앉은 소년이…”



“12개의 모니터에 초생달에서 보름달까지 담은…”



신문들에 실린 내용이다.



또 “초생달같이 생긴 눈썹이 아름답다”거나 “어두운 밤길에 초생달만 을씨년스럽게 떠 있다” 따위는 우리가 흔히 그렇게 쓰고, 늘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초생달은 뜨지 않는다. 우리말에는 ‘초생달’이란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초생달’은 ‘初生(갓 생겨남)’에 ‘달’이 더해진 꼴인데, 한자말 ‘生’은 우리말에서 ‘승’으로 소리가 변하는 예가 더러 있다. ‘이 生’이 변한 말 ‘이승’이 그러하고, ‘저 生’이 변한 말 ‘저승’도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한자어 ‘生’이 모두 ‘승’으로 변하고, 그렇게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승’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한자말 ‘今生’은 ‘금생’으로 써야지 ‘금승’이라고 써서는 안 된다.



한편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백과사전에는 ‘초승달’을 ‘초생달’이라고도 한다고 풀이해 놓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국어사전도 “초생달은 초승달의 잘못”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초승달’에서 보듯, 우리말에는 한자말을 한글로 적을 때 한자말의 원래 소리가 변한 것이 더러 있다. ‘금실’도 그중 하나다.



“부부간의 화목한 즐거움”을 뜻하는 말은 ‘琴瑟之樂’이고, 이의 준말은 ‘琴瑟’이다. 이때의 ‘琴’은 ‘거문고 금’이고, ‘瑟’은 ‘큰 거문고(비파) 슬’이다.



즉 ‘琴瑟’은 거문고와 비파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알근달근하게(최근 신문에서 그 쓰임이 부쩍 는 ‘알콩달콩하다’는 사투리임) 사는 부부 사이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한데 이 琴瑟을 한글로 쓸 때는 ‘금슬’이 아니라 ‘금실’로 적어야 한다.



琴瑟之樂도 ‘금실지락’이지 ‘금슬지락’이 아님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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