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일심동체…"뉴스는 없다"
<2006 독일 월드컵과 언론-신문보도>
방송 비판하던 신문들도 '그 나물에 그 밥'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6.06.21 11: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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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월드컵 관련 신문보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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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 이상 욕심…기사 질 뒷전, 지면 메우기 급급
방송의 ‘월드컵 올인’을 비판해 온 신문의 월드컵 보도 역시 천편일률적이며 차별화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월드컵 우리나라 대표팀의 토고 전 다음날인 지난 14일자부터 20일자까지 경향, 동아, 조선, 한겨레 등 4개 신문을 표본으로 분석한 결과, 네 신문은 거의 같은 내용으로 7면~12면의 지면을 월드컵 기사로만 채웠다.
토고 전 다음날인 14일자에는 한겨레를 제외한 세 개 신문 모두가 1면 통단 표제로 국가대표팀의 승리 기사를 실었다.
동아는 월드컵 기사로만 채워진 12면 등 총 27꼭지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은 7면 24꼭지 , 경향은 7면 20꼭지, 한겨레는 5면 20꼭지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의 첫 경기인 폴란드 전 다음날인 6월5일자와 비교할 때 동아를 제외하고는 전면 지면과 꼭지수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토고 전 다음날 네 신문은 경기 결과, 골을 넣은 이천수-안정환 선수 관련 기사, 경기 해설 및 분석 , 국내외 응원 스케치, 외신 반응, 프랑스 전 전망, 한국 외 경기 결과 등 거의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우리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없는 날은 한국 팀 동정, 다른 조 경기 결과 및 전망 등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축구 담당 기자들은 적은 인원과 부족한 소스로 많은 지면을 메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양질의 기사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월드컵 등 큰 이벤트 때 특별취재반이 꾸려지기는 하지만 한 기자가 생산해내야 하는 기사는 심한 경우 12~13꼭지에 달한다. 차별성 있는 기사를 쓰기 보다는 일단 지면을 채우기에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스포츠전문지일수록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과 데스크의 시각도 원인으로 꼽힌다. 축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월드컵 취재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가 모자라다 보니 경기 결과와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현상만을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데스크의 보수적인 시각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축구전문기자는 “일선 기자들이 다양하고 깊이있는 관점의 기사를 올리려고 해도 데스크에서는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몇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기사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의 욕심에 비해 일선 기자들이 접하는 취재환경은 제약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기사 소스는 부족한데 지면은 메워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정재윤 기자는 19일자 월드컵 호외 ‘비판이 약’이라는 기사에서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 매일 한두 명의 대상자를 정해 인터뷰 기회를 제공했다. 그나마 훈련이 끝난 뒤 몇 분간 스탠딩으로 뻔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의 ‘말씀’에 목마른 기자들은 어설픈 몇 마디의 말로 장문의 기사를 만들어내야 했다”고 토로했다.
스포츠 면을 월드컵이 독점한 채 국내 축구는 물론 비인기. 아마추어 스포츠가 외면당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6일부터 휴지기에 들어간 프로축구 ‘삼성하우젠컵 2006’조차도 월드컵 열기에 밀려 대회 막판 신문에서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는 최근 성과를 올리고 있는 차범근 MBC 해설위원이 감독을 맡고 있는 수원삼성이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2006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가 5월24일 개막돼 7월10일까지 펼쳐질 예정이나 신문에서는 스코어조차 다루지 않고 있다.
올해로 38회째를 맞는 대통령기 남녀고교농구대회, 유한철배 전국대학아이스하키선수권 대회도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한국여자농구연맹 이명호 사무국장은 “전 국민적 월드컵 열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보도에서 최소한의 균형이 맞춰져야 비인기 스포츠도 생존해나갈 수 있다”며 “언론의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야후코리아 최성욱 스포츠 PD는 “신문들이 역량 이상으로 지면을 욕심내고 있기 때문에 양질의 기사가 나오기가 어렵다”며 “독자 수준은 계속 높아지는데 사회학적 접근 등 좀 더 심오한 분석과 뒷이야기보다는 스타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기사를 내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