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데스크 본 것" VS 위원 "No 친북사설"
헤럴드경제, 신 논설위원 26일 거취 표명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 입력
2006.06.23 13:54:10
‘친북사설’논란에 휩싸였던 헤럴드경제 신상인 논설위원은 26일 거취문제를 정리할 예정이다.
신 논설위원은 23일 오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26일 회사에 출근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이번 논란은 주필이 ‘친북사설’이라는 언급하면서 촉발했고 아직까지 북한을 대변하는 사설을 썼다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실 주필이 문제를 제기한 ‘북한이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국’부분은 너무나 분명한 객관적인 사실에 불과하다”며 “미국 일본 중국 모든 북핵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병문 주필은 “이번 일은 한마디로 기자들이 출고한 기사에 대해 부장급들이 데스크를 보듯 주필로서 논설위원이 쓴 사설을 데스크를 본 것뿐”이라며 “오히려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한 민 주필은 “신문사마다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 신문의 경우 보수적인 논조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한 뒤 “회사의 입장과 반대되는 사설을 썼을 때 주필로서 데스크를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한편 신 논설위원은 지난 2일자 ‘대북 경수로 사업의 허무한 종말’이란 사설에서 당초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라고 표현했으나 이 부분이 문제가 돼 문 주필이 내용을 대거 수정한 채 보도해 논란됐었다.
다음은 신 논설위원이 사내 이메일을 통해 ‘헤럴드경제 동료, 후배들에게 드리는 글’이다.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나의 집배신 메일 발신 기능이 차단된 후 메일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는 논설위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로 인해 논설위원인 내가 왜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는 지 여러 사람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장기적으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금요일인 지난 2일 아침 ‘대북 경수로 사업의 허무한 종말’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넘겼다. 30분이 지나도 다시 넘어 오지 않아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민병문 주필이 노기 띤 음성으로 “사설을 온당치 않게 썼어. 북한정권 대변하는 식이야”라며 내용이 180도 달라진 사설을 주고 가는 게 아닌가. 충격적 사태였다. 일단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읽어 보고 주필이 고친대로 쳐서 출고부터 했다. 북한을 대변했다면 내가 ‘빨갱이 사설’이라도 썼다는 것인가.
주필은 “어떻게 북한이 최대 피해국이냐.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지”라며 따져 물었다. 고작 그 표현이 극단적 판단의 근거가 됐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나는 “북한이 정신 차려야 한다는 얘기다. 강하게 버티는 것만 잘했지 시간만 보내고 결국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저 담담하게 그 점을 강조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북한을 대변했다는 말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러자 주필은 냉소적으로 “알았어”라고 말 한 후 ”광화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 보자“고 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회사의 ‘어른’으로 존경 받는 민 주필이 그런 식으로까지 일방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광화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신문에도 게재가 안 된 내 사설을 읽어 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설은 신문을 대표한다. 내가 북한을 대변하는 사설을 썼고, 그래서 주필이 그것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했다면 나는 논설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내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만약 북한을 대변하는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 내용의 사설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인권 유린적 상황을 당하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냥 지나쳐 버려야 하는가.
최근 들어 민 주필의 표현이 부쩍 거칠어진 이유에 대해 내심 고민이 많던 차였다. 사설 뿐 아니라 내 얼굴과 이름을 걸고 쓰는 칼럼까지 시의성과 비판 정신을 들먹이며 대 놓고 공박하는 게 너무 일방적이고 고압적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심지어는 “논설위원을 2년 몇 개월 씩 했다는 사람이 사설이라고 쓰는 게...”라는 발언까지 감내했다. 그러나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해도 멀쩡한 사설을 자의적으로 ‘친북’으로 모는 것까지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이었지만, 일단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역시 뻔한 결과였다. 부끄럽지만 내가 쓴 사설 원본을 편집국 동료와 후배, 사원 여러분에게 올리게 된 배경이다. 다시 읽어보니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글이지만, 있는 그대로 전한다.
나는 헤럴드경제로 오기 전 93년 4월부터 97년 10월까지 다른 신문의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적이 있다. 북핵문제가 압도적 관심사가 됐던 시절이라 나는 그 4년 반 동안 북핵문제와 씨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전문분야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가 북핵 인 것이다. 나는 사람에 따라 ‘북한이 역시 최대피해국’이란 말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가 데리고 있는 논설위원을 다짜고짜 북한 대변인으로 몰아 부칠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누가 반체제 노래로 생각하고 불렀겠는가. 그저 안기부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사실 주필이 문제를 제기한 ‘북한이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국’ 부분은 너무나 분명한 객관적 사실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중국 모든 북핵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 전문가라 해서 달리 판단할 이유가 없다. 경수로 사업을 계속하면 한국은 앞으로도 최소한 20억 달러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돼 있다. 경수로 사업 중단은 경제적으론 우리에게 이득 인 것이다. 다만 여태까지 들어간 10억달러가 아깝고 북핵문제 해결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 북한은 손아귀에 거의 들어왔던 46억 달러 가치의 경수로가 통째로 날라 갔다. 주변 지역을 경제특구로 개발한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최대 피해국이 북한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는 오히려 민주필이 개작해 2일자에 게재한 사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북한에 이처럼 목을 매야 하는 가”라고 느닷없이 목소리부터 높였다. 우리 사설에 종종 등장하는 스타일이다. 그 다음 “대북한 퍼주기식 외교의 결말을 보는 것 같아”라는 부분은 사실 관계 확인부터 잘못된 것이다. 물론 북한에 제공하는 모든 것을 ‘퍼주기’로 규정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화해와 협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극단적 사고방식이다. 책임 있는 신문의 사설이라면 그런 논조는 피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경수로 사업이 쌀, 비료 제공 등과 같은 우리 정부의 일반적 퍼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북 제네바 합의의 핵심인 경수로 사업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됐고 종결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게 등 떠밀려 반강제로 한 것인데 그것도 퍼주기로 비판해야 할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주필에게 경수로와 대북 퍼주기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고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지적을 받고 고치기엔 주필의 권위가 너무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대로 물러선다면 내가 내 자신을 영원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논설위원인데 독선과 편견, 부당한 권위주의에 맞설 생각은 안 하고, 회피하는 것으로 25년 언론생활을 마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라도 나름대로 마무리는 지어야 한다.
둘째, 우리 회사에 나 같은 불행한 논설위원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빈 자리를 메 꿀 텐 데 내가 아무 소리 안하고 사라지면 유사한 사태가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실상을 밝히는 게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요 의무일 것이다.
특별한 이유와 근거 없이 논설위원이 쓴 사설을 북한을 대변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중대한 사태다. 이상한 편견과 선입관, 불순한 의도가 작용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다. 나로선 주필의 판단력에 결함이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감정적 횡포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불순한 의도, 즉, 나를 논설위원 실과 회사에서 내쫓기 위한 조직적 시도로 봐야 하는 것인지 착잡하기만 하다.
나는 때때로 헤럴드경제의 ‘사설이 외딴 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시대착오적 권위주의와 헛된 老慾이 판을 치고, 때로는 독선과 편견이 정론으로 포장되고 있다. 내 자신 훌륭한 논설위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저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달랑 2명의 논설위원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를 담당하면서, 그것도 거의 매일 사설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쓸 때마다 훌륭한 사설을 쓸 수는 없다. 나는 출중한 논설위원은 못되지만, 회사 동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설과 칼럼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누구나 때가 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이 시점에서 사표를 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히 올 때가 온 것뿐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언론의 사명이 정부 권력 비판 운운하는 ‘훈계’까지 들은 마당이라 사실 미련도 없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싶다. “세상이 바뀌고, 따라서 언론의 유행도 바뀌었지만, 우리 언론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단지 오늘 유행의 컨셉이 비판일 뿐이다.” 여러분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6월 19일 2006, 신상인 논설위원 sanginsh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