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언론, 삼성이 집어 삼켰다"
신문법 '편집위원회'조항 제도화 필요
'언론과 삼성' 토론회
이대혁 기자 daebal94@journalist.or.kr | 입력
2006.08.02 13: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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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1일 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열린 ‘시사저널 기사 삭제 사태를 계기로 본 삼성과 언론’토론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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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홍보비를 줄이지 않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홍보 예산을 크게 축소하는 상황에서 삼성의 이런 조치는 언론사에게 단비가 될 것이며, 광고를 매개로 한 삼성의 대 언론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열린 ‘시사저널 기사 삭제 사태를 계기로 본 삼성과 언론’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시사저널 안철흥 노조위원장은 “언론사 경영진과 삼성 그룹 사이에는 ‘특종은 막을 수 없다. 그게 아니면 쓰려 하지 말라’는 묵계가 만들어진 형편”이라며 “직접 기사를 쓰는 기자들까지 그런 정황을 고려하도록 암암리에 압력이 가해진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지난해 시사저널의 삼성 광고 비중이 6.6%임을 강조한 뒤 삼성 그룹을 해부한 시사저널 통권 기획호가 발간된 뒤에는 삼성 계열사 광고 집행이 한동안 끊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기자들은 몇 차례 내부 충돌을 거치고 나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는 단계”라며 “청와대는 기사를 빼지 못해도, 삼성은 뺄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알려졌고 시사저널의 금 사장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은 한국의 프리메이슨”
발제를 맡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은 삼성을 사회 엘리트들을 흡수해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전 세계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성장한 음모집단인 ‘프리메이슨’에 비유하며 “삼성은 한국을 ‘경제적 지배’ 상태에서 ‘사회적 지배’로 확장하고 있는 기업”이라며 “삼성이라는 프리메이슨에 한국의 모든 정치권과 언론이 무릎 꿇은 상태”라고 말했다.
양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권이 삼성에 권력을 넘겼다고 비판하고 그 근거로 2003년 노무현 정권 이후 다른 기업보다 월등한 삼성의 비약에 정부가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을 내세웠다. 또 최근 한·미 FTA 협상에서도 삼성이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삼성만을 위한 부의 집중과 집적을 쉽게 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이 구축된 현실에서 한국사회는 프리메이슨 삼성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대부분 삼성의 대 언론 관리에 대해 공감했고 시사저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문법 상 임의조항인 편집위원회를 제도화 시켜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공회대학교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는 “편집권이 쟁점이 되는 이번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며 “현재 금창태 사장은 발행인이자 편집인이라는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신문법의 허점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신문에서 편집인이라면 편집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편집국장이나 주필이 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문법상 편집위원회 및 편집권에 관한 조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손석춘 기획위원도 편집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찬성하며 “편집의 자율성이라는 것은 편집국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이라는 역향력 있는 조직과 싸우고 금창태 사장의 언죽번죽 당당함에 맞서고 있는 시사저널 기자들로서는 편집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싸워나가 언론사에 중요한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편집위, 강제조항으로 바꿔야”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편집위원회를 규정한 신문법 제18조를 보면, 지금은 일간신문에 한해서 편집위원회 조항이 있는데, 주간지의 경우 편집위원회를 둘 경우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에 일간신문에만 적용한 것”이라며 “시사저널의 사태로 인해 이 조항을 ‘일간신문’에서 ‘일반 주간신문’도 포함하도록 바꾸고 ‘편집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권고조항을 ‘둬야 한다’라는 강제 조항으로 신문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신문법 개정 의사를 시사했다.
삼성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참여연대 김상조 참여경제센터 준비위원장은 “삼성은 노동문제와 조세문제에 있어서는 주주자본주의 방식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중·집적은 허용하되 이를 경제영역 이외의 사회적 세력 균형을 통해 제어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방식을 때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 언론은 삼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추궁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MBC 이상호 기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은 삼성 이건희 독재 치하에 있는 형식상의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삼성을 의심하는 기사는 살아남기 어렵다”며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부가 가장 먼저 방송국과 언론을 장악하듯이 삼성 이건희 일가도 독재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고 막대한 자본력으로 그나마 독립적인 언론(시사저널도 예외는 아니다)들마저 대부분 집어삼켜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