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만 삼성기사 뺐다

월간조선·한겨레21, 삼성 전화·항의 받고도 게재


   
   
다른 매체에서는 유사한 내용의 기사가 모두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사저널만이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은 임원회의를 거쳐 제870호에 게재될 예정이었던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인쇄과정에서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이윤삼 편집국장과 작성한 이철현 기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 사태가 촉발됐다.

그러나 월간조선, 한겨레, 한겨레21 등 다른 매체에서는 삼성 관련 기사를 다뤘다는 점, 특히 월간조선의 기사는 삭제된 기사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금 사장의 기사 삭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계의 반응이다.

시사저널 이철현 기자가 작성한 기사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의 주 내용은 이학수 삼성그룹 기획전략실장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그 결과 이 실장의 인사가 삼성의 한 계열사 경리과 출신 후배들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삼성그룹의 인사원칙이 ‘신상필벌’에서 ‘신상필상’으로 바뀌었고 이부회장 측근인 계열사 재무부서 출신의 인사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한 해 총 매출이 1백50조원이 넘고 한국 총 수출액의 25%를 차지하는 굴지의 기업, 삼성에 대한 기사인데다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내부 불만이 ‘인사 독선’으로 표출됐다는 사실에 이 기자와 편집국 간부들은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금 사장은 이 기사가 사기업 내부 문제이며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다며 광고로 대체했다.

월간조선은 지난 8월호 ‘10년 장수 이학수 체제 마감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삼성의 하반기 인사에 대한 내용으로 이학수 실장의 진퇴 여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삼성그룹내의 이 실장의 위치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불린 조선시대 영의정이라고 적시하고 향후 인사에서 그의 진퇴 여부가 태풍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기사는 이 실장과 노무현 대통령과의 친분, 고려대 인맥과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의 중용 등을 다루면서 그가 차지하는 삼성에서의 위치를 언급했다. 삼성그룹 내에서 인사에 대한 불만도 다뤘다.

이 기사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월간조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앞서 한겨레는 지난 5월8일부터 13일까지 ‘집중비교 삼성 대 현대차’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했고, ‘한겨레21’도 지난해 9월 제576호에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 금융과 산업 자본 분리 원칙 위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 관계자의 이의 제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내용에 있어서도 이들 기사가 삭제된 시사저널의 기사보다 삼성 내부의 문제점이나 인사 문제, 기업의 윤리 문제를 신랄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삼성은 이들 기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향후 제기할 것이라고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기업 내부의 민감한 문제에 대한 기사가 나갈 경우 대부분의 기업 홍보실에서 으레 항의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삼성 관련 기사를 다룬 한 기자는 “기사가 진행 중일 때 삼성에서 전화를 해 빼달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삼성 홍보실의 경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전화로 항의하거나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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