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보도 인권침해 심각

개인정보 유출 등 피의자 권리 무시

기소도 안된 사건 언론이 ‘여론재판’

최근 ‘일심회’ 사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가 피의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이 진실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고 기소도 되지 않은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의자는 물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가족들의 인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신문윤리실천강령 제7조 ‘범죄보도와 인권존중’에는 “언론인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의 형사사건 피의자 및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더구나 피의자의 개인 정보가 보도되면서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족들은 피의자에 대한 개인 정보 가운데 오보도 많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7일자 ‘추가체포 최기영 부인·처남까지도 94년 간첩 유죄’라는 기사를 통해 피의자 신분으로 연행된 민주노동당 최기영 사무부총장의 부인 김은주씨와 처남이 과거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김은주씨는 “언론이 사건과 관련도 없는 피의자 가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93년 당시 사건과 관련 프락치 개입 건에 대해서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도 인정했으며 대법원은 간첩죄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피의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업체에 대한 정보도 공개됐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자에 연행된 이모씨, 손모씨가 관여하고 있는 사업체를 자세히 보도했다. 회사의 간판과 입구 사진도 실렸다. 27일자 신문에는 이씨의 정면 사진이 게재됐다.

중앙일보도 28일자 ‘사건흐름도’에서 이씨의 사진과 경영하고 있는 사업체의 실명을 실었다.

연합뉴스(25일)와 중앙일보(26일)의 “이씨는 또 통발어선 선원으로 일하던 99년 5월 독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동료 선원들을 흉기로 위협해 감금한 뒤 월북을 시도한 혐의(보안법상 잠입탈출)로 구속돼 2000년 3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는 보도도 동명이인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가족들은 반박했다. 이씨는 1999년 당시 영국 유학중이었다고 부인은 밝혔다.

동아일보 등 언론들이 미 문화원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고 보도한 손씨는 농성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모임의 관계자는 “법적 검토를 거쳐 법원 및 검찰에 해당 언론사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민형사상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론인권센터 김종천 언론피해상담소 본부장은 “간첩죄 적용 자체에 대해서도 법리적 논란이 있고 본인들이 관련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는 등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들의 개인정보가 공개된 것은 문제”라며 “언론보도가 성급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명옥 언론위원장도 “이번 언론보도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피의자는 물론 사건과 관련이 없는 가족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라며 “기소도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실명과 얼굴, 개인 사업체의 정보까지 기사로 내보낸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브로커로부터 사건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건은 기소 전에는 언론이 개인정보를 내보내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과 비교했다.

이 사건 관련 언론의 보도에는 다양한 인권 침해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일심회’ 사건 구속자 5명의 공동변호인단은 김승규 국정원장이 언론보도를 통해 수사 중인 이 사건을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함으로써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2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사실공표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민주노동당도 김 원장을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형법 제126조에는 수사기관이 범죄혐의 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개(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공소 제기 전 수사 단계에 있는 불확실한 피의사실을 일방적으로 공표할 경우 피의자가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불이익을 막기 위한 것이다.

수사기관은 소송법상 한 편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수사기관이나 수사공무원에게 해당되는 ‘신분법’이기 때문에 언론에게 직접적인 법적 관련은 없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대부분 언론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할 언론을 통해 피의사실공표가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국가보안법과 관련, 일단 침해된 인권은 회복이 힘들다”며 “당국의 노골적 공표를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보도는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제27조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원칙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수립된 이래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도 포함돼있다. 법학계에서는 피의사실공표금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심회’ 사건 관련 피의자들은 모두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가족모임 관계자는 전했다. 장모씨 외에는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며 “재판에서 밝히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구속영장에는 국가보안법 상 회합통신 혐의만이 기재돼 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경향신문은 2일자 1면 머리기사 ‘이상한 간첩 수사’를 통해 “선 공개, 후 수사” “국정원장의 유례없는 수사 중 사건 발언” “검찰과 국정원의 의견 차” 등을 근거로 사건의 진실에 의문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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