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제, 불우이웃돕기식 접근은 곤란


   
 
  ▲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가끔 타 매체 언론인들에게서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요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만나 사연을 알리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

언론인들이 찾는 사람은 가정 안에서 심각한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거나,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이거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이거나,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이거나, 집에서 쫓겨난 십대 동성애자거나, 집 밖을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이거나, 쉼터가 필요한 이주여성 등이다.

그런데 언론의 생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요청을 수락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인권을 침해 당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같은 사례들을 발굴하고 보도하여 사회에 알려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연말 연시에 부각되곤 하는 ‘불우이웃 돕기’ 식의 접근을 통해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인권문제를 다룰 때, 당사자들이 처한 차별과 폭력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쉽게 사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보도내용의 ‘선정성’과도 연결되는데, 남편의 폭행을 피하기 위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아내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기사 또는 방송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유도한다는 것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처럼 불행하고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당사자들의 인권회복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기준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아존중감’이다. 아무리 어렵고 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간혹 언론인들은 취재과정에서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들을 ‘나보다 못한 사람들’로 취급하며 우위에 서려는 무례함을 범하곤 한다. 그러다가 취재 대상인 당사자들이 자신보다 더 똑똑하고 당당하게 이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해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마주하곤 당혹스러워한다.

엄밀히 말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은 ‘불쌍한 이웃’이라기보다는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며, ‘권리를 회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이들의 상황을 보도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들을 우리가 도와야 할 ‘불쌍한 이웃’으로 간주했을 때, 언론의 보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반면, ‘권리를 회복해야 하는 사람들’로 접근했을 때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배우고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회정의나 인권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언론인들은 취재와 보도의 전 과정에 거쳐 견지해야 할 취재윤리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잘 팔리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방식과의 사이에서 곧잘 갈등을 빚는다. 지금 한국언론의 생리를 보면, 이 같은 문제로 갈등하는 언론인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황색저널리즘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그럴수록 언론인의 기본적인 자세와 인권지수가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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