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임제 개헌은 국가 인프라 만드는 일"
'원포인트 개헌' 주창한 중앙일보 전영기 기자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7.01.17 15:05:14
|
 |
|
|
|
▲ 전영기 기자 |
|
|
20년 기자 생활의 ‘8할’인 16년을 정치부에서 보낸 중앙일보 전영기 기자(정치부 부장대우)는 7년 전부터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창해왔다. 그는 2000년 내놓은 저서 ‘성공한 권력’에 쓴 ‘대통령 4년 중임제, 3대 선거 동시선거 체제로 개헌하자’는 글에서 2002년 지방선거 전까지 10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포인트 개헌’이란 용어도 전 기자의 작품이다. 그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70조 한 조항만을 바꾸자고 말한다. 개헌 논의는 “자칫 온갖 나쁘고 소모적인 것을 다 끌어내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0조 한 조항만 바꾸자고 한다면 정치권의 합의가 훨씬 용이하리라는 판단이다.
전 기자는 지난해에도 계속 4년 중임제 개헌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했다.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등에 실은 칼럼 ‘헌법 제70조 ‘원포인트 개헌’ 합시다’(7월7일자) ‘강재섭 대표가 4년 중임 총대 메라’(8월4일자)’ ‘대통령 단임증후군 끝낼 때’(월간중앙 7월호)를 비롯 새로 쓴 책 ‘2007년 대선 승자는 누구인가’에서도 주장은 일관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이 나온 지금, ‘원조 개헌론자’는 개헌과 현 정치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언론계에서 처음으로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했다. ‘원포인트 개헌’도 제안했다. 문제의식의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는 왜 계속 실패한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 나올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모두 대통령 전에는 사랑받는 정치인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유력 후보들이 대통령이 돼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가 5년 단임제에 있다. 5년 단임제는 권력을 잡는 데만 열중하고 국민을 위해 권력을 쓰는 데는 소홀한 제왕적, 불임(不姙)적 특징을 갖는다. 정권 평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002년 대선을 보자. 노무현이라는 드라마가 투표 9개월 전 연출됐다.
지금까지 당위론적인 4년 중임제론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학자의 몫이다. 기자는 칼럼과 기사를 통해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원포인트 개헌’은 4년 중임제 개헌을 어떻게 성공시킬까 실용적 관점에서 떠오른 액션 프로그램(Action Program)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내가 제기한 핵심은 70조 한 조항만 바꾸고, 개헌을 한나라당이 하라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개헌론이 힘을 못받고 있다. 취지가 옳다면 누가 제기했든 하는 게 옳지 않나.목적이 올바르면 주체가 누구라도 좋다? 그건 정치의 ABC가 아니다. 정치는 사람이 한다. 현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 개헌을 추진할 능력이 없다. 우연과 행운에 의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개헌을 들고 나와야한다고 말했다. 현 정권이나 여당이 하면 될 일도 안된다. 후보들도 할 수 없다. 정략적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한나라당이 안하니까 노 대통령이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개헌 카드를 받아서 국회가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한나라당 집권에도 유리하다. 개헌은 국가인프라를 만들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정부 비판만 했다. 수권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원포인트 개헌은 우리나라의 정치 인프라를 까는 중대한 일이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을 건설했던 것만큼 필요하다.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 확률을 반 이상 줄일 수 있다.
-개헌이 한나라당에 유리하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왜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나. 노 대통령은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다. 4년 중임제 개헌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을 것이다. 노 대통령 특유의 ‘파이터’ 본능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개헌 정국을 통해 레임덕을 막고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나가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개헌 취지는 동의하지만, 다음 정권에서 처리하자는 의견이 많다.
다음 정권에서 하자는 것도 일리는 있다. 안 되면 다음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현 정권이 추진하기엔 힘이 없고, 한나라당도 반대한다. 지금 개헌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최선은 아니고 차선이지만 다음으로 넘기자는 데 반대하지는 않는다.
-언론이 여론조사 등을 근거로 개헌론을 조기 진화시켰다. 공론화를 막았다는 비판도 있다.
언론보다 한나라당이 더 문제다. 언론은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중대한 사안인데 여론조사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의원들에게 논의 자체를 못하게 한 건 잘못이다. 지금 개헌이 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이 “노 대통령이 하는 개헌은 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일단 발의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전망은. 임기단축 카드가 나올까.
국회에서 논란이 되다가 부결될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단축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조기 하야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대선 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진다.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니까.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 단일화에도 변수가 생긴다. 지금 한나라당은 6월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려 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만두면 60일 안에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명박-박근혜 단일화 가능성이 많이 높아졌다고 본다. 그런데 임기중단이라는 상황이 생기면 반전될 수도 있다. 단일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개헌 정국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파장이 계속될 것이다. 덮기 논리로 가면 대응이 어렵다.
-중임제 자체에 대한 회의도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재선이 되더라도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년 선거가 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단임제의 누수에 비해 연임제는 훨씬 약하다. 5년 마다 누수되는 것보다 8년 마다 되는 게 더 낫지 않나. 단임제 아래 선거는 정권 견제의 역할을 못한다. 지금까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정권 견제가 됐나?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의 결과로 변했나?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로 평가해야 한다. 대통령이 소신을 갖고 일을 하려면 8년 이상 해야 한다. 그정도는 보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독일의 콜 총리는 18년을 집권했다. 영국의 대처는 11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14년이다. 미국도 실패한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8년을 했다. 단임만 하고 나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젠 틀렸다.
-전 기자의 주장은 자칫 한나라당을 위해 전략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정략과 전략이 국익에 이바지하느냐다. 보편적인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느냐다. 이익과 이익이 맞붙어 공동선을 추구해나가는 게 정치다. 4년 중임제는 국가적 인프라라는 공동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 정권은 개헌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하라고 한 것이다. 그들의 이익과도 부합하니까 하라는 것이다.
-최근 쓴 책에서 성장과 통합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 않나. 성장과 통합을 병행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성장과 통합은 병행 가능하다. 평화와 개혁을 말하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다. 공허하다. 그것을 외치던 사람들이 4~9년 동안 통치했다. 성과가 보잘 것 없다. 곳간이 비어버렸다. 그들은 비용은 말하지 않는다. 액션 프로그램이 없다. 나는 프로그램을 달라는 것이다. 미국은 10년 만에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일본은 6년 걸렸다. 우리는 12년째 그 자리다. 이건 리더십의 문제다. 통일을 주장한다. 하지만 3년 내에 닥쳐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평화와 개혁을 말하는 세력은 그 통일비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성장을 통해 평화와 복지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성장과 통합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당선될 것이다. 여권도 이제 공허한 논리를 접고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성장과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