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위기는 물론이고 방송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제 모습과 역할을 찾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넷과 DMB, IPTV 등 미디어 기술은 발전하는데, 정작 미디어에 담아야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제도, 기술, 산업에 대한 논의는 다각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미디어에 대한 논의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밀히 말하면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소통 구조와 방법 그리고 내용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기술 발전만 좇다 미디어의 기본적 기능인 저널리즘에 대한 시대적 성찰이 없었다.
한국언론재단은 지난해 ‘2020미디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환경 변화와 관련한 정책, 제도, 산업, 기술,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첫 결과물인 ‘한국의 뉴스미디어 2006’을 지난 5일 발표했다. 많은 연구 결과물 중 특히 기자들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기사체 문제, 출입처 관행, 방송 저널리즘 그리고 1면 머리기사에 담긴 한국 신문의 특징 등을 간추렸다.
“역피라미드식 기사체가 신문위기 불러와”
한겨레 안수찬 기자 ‘뒤집힌 피라미드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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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안수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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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문의 전형적인 기사체인 역피라미드식 기사의 구조가 한국 신문 위기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역피라미드식 기사체는 ‘객관주의 저널리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내용이 아닌 형식적인 불편부당성,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실 위주의 정보제공에 주력하는 보도 태도”라고 밝혔다.
따라서 “1980년대 우리 언론에서 역피라미드식 기사가 신문보도의 표준이 됐다”며 “이는 이념적·정치적 압박과 논쟁을 회피하려 한 결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안 기자는 객관과 공정을 가장한 한국 신문의 편파성은 그 자체로 매체 불신의 토양이 됐으며 역피라미드식 기사는 대중들이 인식하고 말하는 구조와 정반대 방향으로 정교화 된 점이 위기의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
그 결과 2000년대 이후 시민들은 블로그나 미니 홈피 등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바를 자신의 언어로 전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안 기자는 또 한국 언론에서 역피라미드식 기사와 내러티브식 기사는 독자를 대하는 언론기업 및 언론인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규정했다. 즉 역피라미드식 기사가 독자를 향한 언론사나 기자의 일방적 담론을 강요했다면 내러티브식 기사는 독자가 기사에 직접 개입해 사색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안 기자는 역피라미드식 기사가 지금까지 ‘객관을 가장한 편파’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음을 피력하며, “지금까지 한국의 주요 신문매체들은 이 객관주의를 편의적이고 기계적이며 다소 기만적인 방식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안 기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 신문은 역피라미드가 아닌 내러티브의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그동안 1면과 사회면을 장식해온 역피라미드식 기사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러티브식 기사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최근 한국의 주요 신문에서 역피라미드식 기사의 파괴 또는 지양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변화는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기자는 이러한 변화는 그 동안 역피라미드식 기사의 주인공들이 정부기관이나 주요 단체 및 유력 인사였던 반면, 내러티브식 기사의 주인공은 독자 중심의 필부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곧 내러티브식 기사가 한국 신문의 특장을 제대로 살려 ‘스스로를 특권화해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킨’ 신문 기사를 다시 일상의 곁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된다는 주장이다. 역피라미드식 기사가 유용한 영역은 남더라도 그 비중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기자는 “‘신문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했을 때, 그 핵심은 단순히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이름 없는 주체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충실히 담으려는 노력이야말로 한국 신문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지평”이라고 강조했다.
“출입처 장벽 허물고 입체적 보도 시급”
경향 설원태 기자 '출입처제도의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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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 설원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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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브링핑제 도입으로 취재원과 스킨십이 줄어들어 새로운 취재 방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지금, 언론사는 출입처간 벽을 허물고 유연한 조직운영과 입체적인 취재와 보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경향신문 설원태 기자는 포럼에서 ‘국내 언론사 출입처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발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설 기자는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이 복잡다기한 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주요 정부 출입처의 공보체제가 브리핑제로 바뀌었다”며 “요즘 기자들은 예전보다 더욱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취재와 보도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설 기자는 “출입처 공보관계자들은 브리핑과 보도자료 대로 보도해 주기를 바라지만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을 거부하며 수용자들도 종합적인 보도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발제를 통해 출입기자제와 새로 도입된 브리핑제의 현황과 전망 등을 발표했다. 설 기자는 이를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국회, 법조, 경찰, 교육, 서울시청, 대구·대전시(도)청 등 주요출입처 및 지방까지 포괄한 출입처의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브리핑제 도입이후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관계가 보다 공식화돼 기사를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된 측면은 있지만, 깊이 있는 취재가 어려운 ‘닭장 속의 닭’이 됐다는 것이 대부분 기자들의 평가로 나타났다.
설 기자는 기자와 출입처간 유착에 대해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 이후에는 예전처럼 기자단에 의한 정보의 독과점 폐해와 관언유착의 폐해는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일부 출입처에서 여전히 관언유착이 남아 있음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설 기자는 “공개된 브리핑제는 출입 언론사(등록 언론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분명히 민주적인 정보제공 방식”이라며 “그러나 현행 브리핑제도는 ‘스킨십’에 목말라 하는 일부 언론인들의 큰 불만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원과의 접촉이 어려운 가운데 취재 능력은 결국 취재원을 확보하는 기자 개인의 수완에 달려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설 기자는 이런 출입처 제도의 현황과 문제를 바탕으로 결국 출입처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며 “백악관 출입기자들에 의해 보도된 것이 아니라 경찰기자들에 의해 취재, 보도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사건이 확대되자 백악관 측의 입장을 보도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출입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닌, 심층 취재가 필요한 사안과 출입처 의존 사안의 구별을 요구했다.
설 기자는 “출입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라는 말은 출입처의 고급 취재원에게서 편안히 취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인을 취재원으로 삼아 중요한 정보를 캐내라는 주문”이라며 “관급 기사에 의존하지 말고 현장으로 달려 나가 정책의 대상인 일반인들을 취재원으로 삼으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방송 뉴스, 겉핥기·백화점식 보도 한계”
KBS 이재강 기자 '방송저널리즘의 위기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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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이재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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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저널리즘도 백화점식 보도를 지양하고 미래의 생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KBS 이재강 기자는 포럼에서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와 도전’이라는 발제를 통해 “단시간에 저널리즘의 본령을 점령한 것처럼 보였던 방송 저널리즘에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며 시청률 하락과 시청층의 고령화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간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의 시청률 총합이 2002년에는 46.3%였던 것이 2006년에는 35.0%로 하락했다. 4년 사이 24%의 시청자가 방송 뉴스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4년 사이 지상파 3사 메인 뉴스 시청층 중 60대 이상 시청층의 비중은 늘어나고 40~50대, 20~30대 시청층의 비중은 줄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정보의 소통장으로서 인터넷의 활용도가 커지면서 텍스트 매체인 신문이 더 먼저, 더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면 또 다른 주류 저널리즘인 방송 뉴스 역시 그 타격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국 KBS기자 5백2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결과, KBS 뉴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겉핥기식 보도’와 ‘천편일률적인 뉴스아이템 선정과 배열’이 지적됐다고 밝혔다. 이는 뉴스의 심층성 부족과 백화점식 보도로 표현되는 뉴스 포맷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기자는 1분20초 남짓의 메인 뉴스 형식에 모든 취재가 집중돼 있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1분20초 남짓의 메인 뉴스 포맷에 맞춰 취재, 제작하는 생활을 수 년 간 하다보면 기자들의 행동 양식은 물론 사고의 폭과 깊이도 어느새 1분20초에 맞춰지게 된다”며 “사안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종합적인 안목으로 분석해내며 긴 호흡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데 지극히 둔감해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런 환경에서 심층보도가 정답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방송 뉴스도 심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통 미디어로서 그리고 공적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은 지상파 방송사로서 심층 보도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한편 활로를 기대해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변화의 필요에도 불구 이 기자는 여전히 메인뉴스 중심주의를 현실적 한계로 지적했다. 그는 “(메인뉴스 중심주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는 데 저해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보도본부 전체의 지식 축적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과도한 메인뉴스 중심주의는 저널리즘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대한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 기자는 “심층보도는 공공의 재산인 방송으로서 사회적 책무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심층보도를 위한 기본 방향과 과제로 △메인뉴스의 정체성 재검토 △기존 조직구조, 인사시스템 개편으로 기자의 전문성 향상 △취재 인력의 증원 △취재와 제작의 분리 △기자와 시사PD 간 협업 시스템 구축 △비대화된 비방송 조직/인력을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업무 형태로 전환 등 6가지를 제시했다.
“무거운 주제·정보 재가공…차별화 실패”
고려대 박재영 교수 '신문 1면 머리기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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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박재영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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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신문의 1면 머리기사가 특정 주제에 편중은 없지만 북한관련 뉴스나 비리 및 스캔들과 관련된 기사 등 여전히 무거운 주제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독자적으로 입수한 정보나 단독으로 개발한 정보보다는 공개된 정보와 공개 정보를 재가공한 것이 상당수를 차지,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대 박재영 교수(언론학부)는 ‘뉴스 평가지수 개발을 위한 신문 1면 머리기사 분석’을 통해 지난해 1월2일부터 10월31일까지 발행된 경향,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 등 5개 신문들을 매주 특정 요일을 선택, 1면 머리기사를 분석하고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5개 일간지의 머리기사에 등장하는 주요 내용은 △북한(14.5%) △비리·스캔들(12.7%) △선거·여론조사와 기타 행정(각각 8.6%) 순이다. 대통령(2.7%)이나 정치(3.6%) 관련 기사의 등장 빈도도 낮았고, 가계, 과학·기술, 문화, 의료건강 등의 주제는 매우 적어 신문의 1면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는 일반적인 주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자사만 단독으로 입수한 정보를 그대로 기사화한 경우는 극히 적었다. 적극적인 취재에 의한 독점적인 기획기사나 탐사기사는 기사 10개 중 1개(11.8%)에 불과했다. 또 1면 머리기사 10개 중 8개 이상은 이미 공개된 정보를 거의 그대로 옮겨 쓰거나, 공개된 정보를 보충 취재해 재가공한 기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신문이 차별화에 실패한 것으로 풀이했다.
머리기사의 제목으로 직접인용구 사용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1면 머리기사 10개 중 약 4개(39.4%)는 제목에 직접인용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제목에 사용된 직접인용구가 본문의 직접인용구와 정확히 일치한 경우는 극히 적었으며, 기사 10개중 8개 이상은 본문의 직접인용구를 다소 변형한 것으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직접인용구는 결코 기사를 대표할 수 없는데도 빈번하게 쓰이고 있었으며, 이런 관행은 기사의 공정성 시비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 개인과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는 익명의 취재원이 전체의 25.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명 개인 취재원이 전혀 없는 기사의 비율도 29.1%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취재원 4개중 1개가 익명 취재원인 것에 대해 “익명의 개인이나 불특정 다수를 취재원으로 인용하는 관행이 다소 관대하게 허용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아울러 5개 신문사에서 갈등 사안을 다룬 기사의 절반 이상은 1개의 관점만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문 1면 머리기사에서 대립하는 양쪽 모두의 시각을 담은 복합적 관점이 제시된 기사는 42.4%에 불과했다.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5개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중 투명 취재원이 4개 이상이고 복합적 관점이 제시됐으며 이해 당사자가 4개 이상이 포함된 ‘고급기사’는 11.1%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4개 대형 신문의 고급 기사의 비율은 52%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5개 신문 1면 머리기사의 평균 길이는 원고지 기준 6.7매로 나타났으며 기사구조에 있어서 역삼각형 구조가 신문 전체 기사의 80.5%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