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차별·성희롱·언어폭력 "언론사도 다르지 않다"

2007 여기자 세미나 참가자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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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일동안 제주에서 열린 2007년 여기자세미나에는 전국 70여개 언론사 여기자 대표들이 참가했다. 신문과 방송, 통신 등 다양한 매체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역 대표들은 ‘언론과 인권’ ‘행복한 어머니가 건강한 사회를’ ‘저금리 시대의 효율적인 가계자산 운용 전략’ 등의 강연을 들으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본보는 어렵게 한 자리에 모인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여기자의 권익과 미래’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참가자 70명 가운데 60명이 설문에 응했다. 그 결과를 종합·분석했다.


일부 지역일간지 커피 심부름에 화분 물주기까지
언론사는 성희롱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부서배치를 놓고 남녀 기자들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60명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42명이 직장생활 중 성희롱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바 있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이들(25명, 59.5%)은 성희롱의 주요 발생지로 해당 직장을 꼽았다. 또 출입처에서도 33.3%에 해당하는 14명이 성희롱을 경험 또는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매체별로는 응답자 중 52.3%가 지역일간지에 근무한다고 답했으며, 중앙일간지와 방송사의 경우 26.1%였다. 이에 따라 언론사에서도 성희롱 예방 교육 및 조처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 일간지 3년차 한 기자는 “성희롱이라고 지적할 만한 수위를 넘나드는 언어폭력은 직장 상사 등을 중심으로 쉽게 목격된다”며 “항의를 하려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응답자 가운데 33명에 해당하는 55%의 여기자들은 언론사 입사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언론사 입사 후에도 이같은 불평등 의식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무려 56.6%에 달하는 이들이 남성 동기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한다고 답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여기자들이 경험한 불이익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부서배치에 관한 불평등 의식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응답자 32명 가운데 65.6%에 달하는 21명이 부서배치 과정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불평등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중앙일간지 10년차 근무 경력을 지닌 한 기자는 “정치부, 경제부 등 주요부처에 여기자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또 사회부 등 상대적으로 고된 부서에 배려라는 이름으로 발령을 꺼리는 문화가 여전하다”며 “이는 승진에 있어서도 불이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지역 일간지에선 연차가 낮은 여기자들에게 사내 커피심부름이나 정리정돈, 화분에 물주기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잔업을 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육시설 갖춘 언론사 전국 70여개 중 4곳 불과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여기자들을 위한 별도의 복지시설 및 고충처리 장치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여기자들은 가사 및 육아 등 결혼 이후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해 대부분 직장생활과 병행하면서 본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었다.

60명의 응답자 가운데 44명, 73.3%에 해당하는 기자들이 사내에 여기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모임이나 단체가 없다고 응답했으며 66.6%는 고충처리를 위한 기구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은 선배에게 자문하면서 해결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총 32명(53.3%)가 이같은 방법을 택하고 있었으며 동료와 상의하거나(13명, 21.6%), 직장 밖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고 응답했다. 고민을 해결할 만한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답한 이들도 5%에 달했다.

중앙방송사 5년차 기자는 “직장 내에도 치열한 생존 경쟁이 존재하다보니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을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고충처리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진다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보육시설이나 수유시설을 갖춘 언론사는 전체 70여개 언론사 가운데 중앙일간지 3곳, 지역 방송국 1곳 등 총 4곳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기혼 여기자들은 가사의 경우 △남편과의 분담(5명) △시부모나 친정부모의 도움(3명) △외부 인력고용(2명) △본인이 해결(2명)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육아는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7명)을 받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사설보육시설 활용(3명) △외부인력 고용(1명)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여기자를 위한 사내문화나 시설이 잘 갖춰진 언론사로는 KBS, MBC, SBS, CBS등 방송사들이 주를 이뤘고 신문사 중에선 한겨레와 매일경제가 꼽혔다.


“낮은 보수와 어려운 근무환경”…이직 고려 88%
최근 신문사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이직 바람’은 여기자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로 최근 한 방송사 경력기자 공채에 조선 등 신문사 출신 여기자들이 대거 응시, 자리를 옮겼고 지난달엔 중앙일보 모 여기자가 다른 일을 찾아 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무려 88.3%에 해당하는 53명의 여기자들이 과거 혹은 현재에도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체별로는 지역 일간지 기자들 중 25명이 이같이 응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중앙일간지 기자 14명, 지역 방송국 기자 9명도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입사 3년 미만의 젊은 기자들(중앙일간지 3명, 중앙방송사 1명, 지역일간지 9명, 지역방송사 4명)이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보수 등 보다 안정적인 근무환경 △중앙 언론사로의 진출 등을 이유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자들은 ‘다시 직업을 택한다 해도 기자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35명(58.3%)이 ‘그렇다’라고 응답해 높은 이직 고려율과 비교할 때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견해는 중앙일간지·방송사, 지역일간지·방송사, 통신사 등 응답자들이 몸담고 있는 매체와 큰 관련이 없이 골고루 분포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순수 개인의 만족도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일간지 3년차 기자는 “낮은 보수와 어려운 근무환경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 크다”고 말했다.

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여기자들은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 공정 보도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답변을 한 32명(53.3%)의 소속사를 살펴보면 중앙일간지가 10명, 지역일간지가 18명이었다. 반면 방송사와 통신사 기자는 4명에 불과해 신문사들이 공정한 보도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남성중심 접대문화 사라지면 언론사회 투명해질 것”
“남성중심의 접대문화가 사라지는 순간 언론 사회 전체가 비로소 투명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여기자 세미나에 참석한 지역방송사 한 기자의 말처럼 설문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여기자들이 가장 불쾌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기자사회 문화로 ‘남성중심적 접대문화’를 꼽았다. 복수응답을 포함 총 75명의 답변 가운데 이같이 응답한 38명의 여기자들을 분석해 보면 각 매체별·지역별 또 근무연차별로 골고루 분포돼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기자는 “입사초기엔 1차에서 2차로 자리를 옮길 때 빠지라는 눈치를 알아차리지 못해 고생했다”면서 “이제는 아예 접대자리 자체를 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취재원들과의 잦은 술자리도 여기자들이 겪고 있는 큰 고충 가운데 하나였다. 응답자 중 20%에 해당하는 15명이 ‘출입처에서 생기는 잦은 술자리’가 고역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답변으로 △비공식적 모임에서의 배제(13명, 17.3%) △골프문화(8명, 10.6%)가 있었다. 이밖에 ‘군대식 호칭과 체벌의 난무’(1명)나 ‘인격을 무시한 언어폭력’(1명) 등의 응답자도 나와 시급히 사라져야할 병폐로 꼽혔다.

소속사에 바라는 것을 묻는 질문엔 ‘임금 및 처우개선’과 ‘복지’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임금 및 처우개선(24명, 40.6%)이라고 응답한 이들을 보면 지역일간지 기자가 17명(70.8%)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던 반면 지역방송사는 2명, 중앙방송사는 단 한명도 없어 신문사와 방송사간의 뚜렷한 ‘양극화’ 추이를 대변했다.

총 21명(35.5%)이 꼽은 ‘복지시설 증대’는 비교적 다양한 매체 기자들이 희망하고 있었고, 연수(9명, 15.2%)와 사내교육 기회 확대(4명, 6.7%)를 주장하는 기자들이 뒤를 이었다.
한편 소수답변으로는 양성평등과 언어폭력 금지, 성희롱적 발언에 대한 경각심 고취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경력 쌓일수록 특정부서 국한…문화·레저 관련 근무 많아
문화부나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는 여기자들은 근무하고 싶은 부서로 경제 부문을 가장 선호했다. 총 60명의 응답자 중 25%에 해당하는 15명이 경제분야 출입을 희망했다. 15명 가운데 중앙일간지(7명. 46.6%) 기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치와 사회 등 기존 인기 부서에 대한 선호도도 높았다. 두 분야 모두 각각 11명의 기자들이 희망하고 있었으며 정치분야는 5년차 이상, 사회분야는 5년 미만 기자들의 주된 희망 부서로 꼽혔다.

하지만 희망부서에 대한 공평한 배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일간지에 8년차 기자는 “입사초기엔 다양한 부서로 배치됐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특정 부서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자의 희망과 상관없이 특히 문화나 레저 관련 부서 근무 명령이 많다”고 말했다.

통신사 3년차 여기자도 “주요 사건현장에서 여기자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라며 “정치부나 법조팀은 여자가 뛰기 힘든 부서라는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노동조합에는 70%, 총 42명이 가입돼 있었다. 그러나 일부 중앙일간지와 지역일간지 기자들은 입사 5년이 넘도록 노조 가입이 허용되지 않기도 했다. 이는 연봉계약직 등 소위 비정규직 채용 인력에 대한 차별현상으로 풀이된다.

노조가입 과정 역시 응답자 48명 가운데 47.9%에 달하는 23명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노조 가입여부가 결정되고 있다고 응답해 회사나 노조가 ‘여성 인력 차별’이나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호윤 기자 jhy@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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