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한국 방위비분담금 / 동아일보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

[취재보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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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주한미군사령부 공보담당자의 첫 말은 그랬다. 방위비 분담금이든 아니든 금융권에 쌓여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문을 처음 들은 기자 역시 ‘그럴 리가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상식의 저항’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당국자들과 관계자들을 상대로 지난한 추가취재를 통해 뒤져본 미 국방부의 재무제표는 8천억원이라는 자금의 규모와 내용을 명확하게 입증해주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온 주한미군사령부의 공식 답변은 취재내용을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럴 리 없는 일’이 수년간 벌어져 왔던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주한미군에게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7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규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론은 물론 한국 정부의 사실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는 사이 미군측은 2002년 이후 꾸준히 수천억원에 이르는 분담금을 꼬박꼬박 쌓아두고 있었고, 2006년 분담금 협상에서는 증액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이는 그간 진행돼 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구조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음을, 이를 담당해온 정부 관련기관의 업무자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당시 주한미군사나 한국 국방부는 방위비 분담금에서는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추가취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주한미군 영내 은행에 예치된 자금은 다시 시중은행에 예금돼 매년 수백억원의 이자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수익은 고스란히 미국 국방부로 입금되고 있었다. 미국측의 방위비 분담금 운용은 정직하지 못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확인할 의지조차 없었다.

방위비 분담금은 사실 그다지 인기 있는 기사 주제가 못된다. 한국 정부나 언론에게도 ‘이미 줘버린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기사’를 과감히 표지 머리로 삼아준 편집실의 결단에 고마움을 전한다. 오로지 기사가치만을 고민하며 언론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신동아 선후배들과 이형삼 편집장, 동아일보 출판국 식구들과 고승철 국장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두 달 동안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밤잠 못 이룬 남편을 인내해준 아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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