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실명보도 가이드라인 '절실'
'알권리'-'사생활보호' 주장 팽팽…오보시 명예회복 등 배려 필요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 입력
2007.05.23 14:23:45
공인에 대한 실명보도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언론계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 보도를 둘러싼 실명보도가 쟁점이 된데 이어 지난 10일 ‘전 청와대비서관 딸 부정편입 혐의’보도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일었다.
이는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인의 실명처리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여부와 오보일 때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공인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 등이 거론됐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공인’일 뿐만 아니라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충분히 실명 보도할 수 있다는 입장과 공인이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나올 때까지 ‘인격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실명보도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과거와 달리 사인뿐만 아니라 공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개념이 강화되면서 ‘언론의 자유’와 상충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인의 규정과 공인의 실명보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법원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사생활 보호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에 사실을 떠나 보도에 대한 공인의 명예훼손 소송이 늘고 있는 추세가 반영된 것.
더구나 늘어나는 소송에 비해, 관련 판례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언론사 입장에선 대처 방안이 부족한 실정이다.
더불어 ‘공인’개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각 사안별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또 다른 문제다.
한 중앙일간지 사회부장은 “요즘엔 현장 기자들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데스크보다 먼저 익명 처리에 신경쓰는 경우가 많다”며 “법의식의 선진화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언론의 기능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사 송고를 미룰 경우 ‘국민의 알권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언론들이 ‘피해자 특정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씨나 이니셜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 역시 엉뚱한 피해자를 낳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제 SBS는 지난 9일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과 관련, ‘보복 폭행에 폭력조직 3개 팀 동원됐다’란 기사에서 “당시 복싱선수 출신의 장 모씨가 따로 폭력배들을 데려왔고…”라고 보도했다.
이후 특정인을 추정하는 논란이 일자, SBS는 다음날 ‘폭력배 동원 의혹 장모 씨, 자진출석키로’란 기사에서 “기사에서 나온 전 권투선수 출신 장 모씨는 전 세계 챔피언인 장정구 씨가 아님을 밝혀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연합뉴스 이희용 엔터테인먼트부 부장은 “인권 차원에서 원래 추정하게 해선 안 되는데 우리 언론은 이런 차원의 인식이 부족하다”며 “오히려 법 테두리에서 실명을 쓰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익명을 보장하든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잘못된 보도 이후 공인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도 논란거리다. 일례로 많은 언론들이 지난 10일 ‘전청와대비서관 딸 부정편입 혐의’보도와 관련, 강태영 전 청와대 혁신관리비서관의 실명을 게재하며 국가청렴위와 서울경찰청 등의 조사를 바탕으로 관련 기사를 썼다.
하지만 강태영 전 비서관의 딸은 사격을 시작한지 4개월 만에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우는 등 실제 실력으로 이를 불식시켰지만 언론차원에서 명예회복에 대한 배려는 거의 전무했다.
한 편집국장은 “공익적인 측면에서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공인에 대한 실명 기사를 쓴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나중에 무혐의 처리가 됐을 때 이전 보도와 같은 비중으로 다뤄줘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언론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언론중재위 박재선 교육홍보팀장(변호사)은 “공인을 실명 처리할 때 발생하는 명예훼손 문제의 경우 공공성과 진실성 그리고 해당 기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위법성이 조각된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판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언론계와 언론중재위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