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출입'보다 '취재통제'가 더 문제
선진화 방안 관련 정부 주장 사실인가②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7.06.20 16:07:48
“기자-공무원 소통 원활해야 기사質 향상”
정부 밀실·폐쇄적 경향부터 일소해야
‘기자들의 사무실 무단출입’과 ‘정책기사의 품질’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근거다. 기자들이 부처 사무실에 무단으로 출입하면서 취재해 공무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주고 정리되지 않은 정보가 유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 없는 왜곡된 기사들이 생산되는 데 이것의 핵심에 출입기자제와 기자실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 두 가지 부문에 대해서 살펴본다.
①기자들의 사무실 무단출입을 허용하는 한 후진적 취재행태를 정부가 용인하는 셈이다. 이런 관행을 바꾸지 않고는 후진적 취재행태는 근절될 수 없다.
일선 기자들은 정부가 쓰는 ‘무단출입’이라는 말부터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무단출입’은 금지된 곳을 불법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정부부처 건물에서 기밀이 필요한 곳은 대부분 보안장치가 돼 있어 기자들이 들어갈 수 없다.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같은 부처도 있다. 나머지 사무실은 실제 문제없이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돼있는데 왜 ‘무단출입’이냐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언론에 대해 얼마나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 나타내주며, 일반인들의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기자들이 공무원을 사전 약속없이 빈번하게 방문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일선 기자들은 공무원을 만날 때 대부분 당사자와 먼저 약속을 한다고 반박한다. 약속없이 찾아가면 허탕을 칠 수 있는데 미리 통화를 하고 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성향에 따라 대면 취재를 선호하는 기자들도 있으나 무작정 공무원을 찾아가는 경우는 흔치않다고 말한다. 전화를 해도 항상 자리에 없다고 하는 등 취재를 피하는 듯하면 일단 찾아 가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송고실에서 전화로 취재하는 경우가 많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마감에 쫓기다 보면 공무원을 일일이 찾아갈 시간도 없다”며 “직접 만나는 경우는 심층적인 취재가 필요할 때 정도”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방문이 공무에 큰 지장을 준다는 근거도 미약하다. 한 일선 기자는 “정말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근거를 먼저 내놓고, 등록기자들과 해당 부처가 협의해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처럼 개방시간을 따로 정해놓는 등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정부가 기자들이 엄청나게 무단출입을 하는 듯 선전하면서 모든 취재를 공보실로 일원화해 취재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화든 대면이든 모든 취재의 공보실 경유를 의무화하면 기사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취재에 응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정부는 “일반 기업이나 선진국 정부부처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비교하는 것부터 무리라는 지적이다. 선진국은 공무원의 투명성이나 정보공개 마인드가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고 반박한다. 또다른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정부 방안 발표 이후 공무원들에게 연락하면 ‘잘 아시지 않느냐’는 등 전화취재까지도 벌써 어려워지고 있다”며 “공무원에 대한 자유 취재를 막고 정보를 통제하겠다는 게 이번 정부 방안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②기자실 개혁의 핵심은 부처별 기자실, 부처출입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을 개혁해 정책기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정부의 이런 주장에서는 일단 출입처와 기자단(기자실)이란 다른 개념을 섞어서 쓰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출입처는 정부가 부처를 나눠 국정을 운영하듯 각 언론사의 뉴스조직이 효율적인 취재를 위해 각 개별 기자의 책임 영역을 나눈 것이다. 출입처를 갖고 있지 않은 기자들은 기획취재나 탐사보도 등 맡은 업무 성격상 필요가 없는 경우다. 일선 기자들은 “현재 일반적 뉴스조직이 모든 기자들을 방목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한다. 출입처 제도가 제한적인 프랑스 언론의 경우도 출입기자는 있다. 르 피가로의 알랭 바를리에 기자는 “프랑스 언론도 의회와 엘리제궁 등의 주요 부처에는 출입기자를 두며 (한국과 비슷한 1진과 말진 식의 구분을 통한) 그 기자들끼리 역할도 분담한다”고 말했다.
기자단은 출입처가 같은 기자들끼리의 사적인 네트워크다. 이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는 그 나라의 고유한 언론 문화 및 관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각각의 다양한 연원을 가진 기자단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기자 자신들이라는 지적이다.
한겨레 노동조합 안수찬 진보언론실천위원회 간사는 “기자단에서 생기는 폐단은 법률이나 제도보다 취재 문화와 관습을 바꿔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중심 동력은 기자 사회 내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강제하는 몇몇 물리적 변화로 기자단의 문제가 교정되리라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기자단의 문화를 개선하고 싶다면 사회여론을 환기하고, 시민사회와 독자의 압력과 참여에 의해 개혁 속도를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무리하게 압박하고 나서, 사라지던 기자단을 더 공고히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책기사의 품질 문제는 현 정부가 “언론이 정책을 왜곡 보도하고 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정부 방안대로 하면 정책기사의 품질이 높아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오히려 언론과의 접촉과 소통을 넓히고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줘야 오보를 줄이고 정부 정책의 선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 방안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한 중앙 일간지 기자는 “정부가 자꾸 감추고, 취재를 제한하면 부정확한 기사를 자초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먼저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 사회의 밀실·폐쇄적 경향을 일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자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면 언론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언론계에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도 생긴다. 현 정부가 강화한 언론중재법 등을 통한 대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제대 김창룡 교수(언론정치학부)는 “정부가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다양한데도 굳이 기사송고실 통폐합 등 물리적 수단을 고집하는 데에는 현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감정적 불만이 짙게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