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감사 21명 이과수 폭포 간다 / 중앙일보 정경민 기자
[취재보도부문]
중앙일보 정경민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7.07.04 16: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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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정경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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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독자 제보를 받은 우리 팀은 고민을 거듭했다. 제보의 사실 여부부터가 불확실했다. 34개 공기업 감사가 남미 3개국에 출장을 간다는 내용만 있었을 뿐이다. 비행기 예약은 했는지, 경비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감독관청인 기획예산처엔 보고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벽에 부딪쳤다. 개인 비밀보호 조항 때문이었다. 항공사나 여행사나 예약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출국 후에는 상대적으로 확인이 쉬울 거라 판단했다. 감사들이 출국한 5월14일 우리 팀은 34개 공공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모 감사의 비서는 언론사의 취재임을 알아차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연막을 쳐 취재팀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최종 확인과정에서 취재팀은 실수를 할 뻔했다. 모 감사가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비서도 자리에 없었다. 전화를 받은 옆자리 비서는 “감사님이 출장을 가신 걸로 아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 때문에 취재팀은 그 감사가 당연히 비행기에 오른 줄 알고 출국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기사를 출고하기 직전 감사가 출장을 취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전날 심한 독감에 걸려 출장을 취소했으나 몸이 불편해 회사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취재결과 이번 출장은 기획예산처 주도로 만든 공공기관 ‘감사포럼’의 첫 행사였음이 드러났다. 예산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라는 여론의 압력을 비껴가기 위해 ‘공공기관운영법’을 만들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공기업 감독권을 예산처로 통합해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만든 조직이 감사포럼이었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겠다고 만든 조직이 첫 행사로 남미 이과수폭포 출장을 기획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중앙일보 편집회의에서도 의례적인 감사들의 행사였다면 모를까 감사포럼이 주관한 첫 행사라면 크게 기사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나중에 추가 취재결과 예산처는 감사포럼의 행사를 미리 보고 받고도 제동을 걸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출장 간 감사의 대부분이 대통령 주변이나 여당에서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청와대는 그 동안 정치인은 애국심이 있기 때문에 공기업 임원에 더 적합하다고 강변해왔다. 이번 보도로 청와대는 머쓱해졌다. 말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공기업이 속으로 얼마나 썩어있는지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도를 고치도록 만든 데서 보람을 느낀다.
이번 보도야말로 살아있는 독자의 제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되리라 본다. 이런 일일수록 숨기고 쉬쉬하기 마련이어서 일상적인 취재로는 포착하기 어렵다. 공기업 감독권을 쥔 기획예산처도, 서슬 퍼런 감사원과 청와대도 하지 못한 일을 얼굴 없는 독자가 잡아냈다. 다시 한번 그 독자에게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