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주·장] 네티즌 글 인용 신중해야
익명성 뒤에 허위.악의적 비판 많아
편집국 | 입력
2000.11.16 00:00:00
사이버 게시판이 어느 틈에 언론의 취재원으로 자리잡았다. 각종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을 기자들이 기사의 재료로 삼으면서 이들의 육성이 함성으로 증폭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가상공간을 활보하는 ‘네티즌의 힘’이 현실공간의 미디어를 타고 더욱 위력적이 된 것이다.
이미 여론 형성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한 네티즌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선의든 아니든 익명성을 이용한 이들의 의견, 공세적인 자기표현을 우리가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386 정치인들의 광주 술자리 사건 파장을 보도한 신문들은 이들에 대한 네티즌의 원색적인 비난을 그대로 중계했다. 어느 정도 선별이야 했겠지만. 행간에 이들 정치인을 향한 일부 언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용된 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저급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했다면 설사 일부 시민들이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그대로 옮겼을까? 인터뷰라면 그 네티즌들이 그렇게 흥분했을까?
의료계 파업 당시 서울대병원 소아암 병동의 한 어린이 환자를 인터뷰해 내보낸 KBS의 보도방식에 항의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자칭 환자의 보호자는 파업의 이해당사자인 서울대병원의 의사로 밝혀졌다. 의사선생님이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 “선생님 보고 싶어요”란 아이의 말을 유도했다는 주장의 진위는 따져야겠지만 의사가 보호자 행세를 한 것이다. 신분의 도용이다. 이 글 역시 여러 매체에 환자 보호자가 쓴 것으로 인용됐다.
얼마 전 동아닷컴이 실시한 새만금 간척사업 찬반 사이버 여론조사는 간척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건설 관계자가 동원한 현장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에 조사결과가 뒤집히기도 했다.
마포경찰서 자유게시판엔 작성자가 기자협회(본문엔 전국언론단체협회 소속 민주실천기자협회)인 엉뚱한 정정보도 결의가 올라 있다.
네티즌의 글을 이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인용할 땐 더 신중해야 한다.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네티즌의 글은 참고자료로만 이용하라고 권한다. 인용을 해야 한다면 요약을 하라고 귀띔한다. 직접적인 인용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자문해 보자. 원색적으로 남을 공격하는 글을 그대로 옮기면서 단지 네티즌의 의견을 소개할 뿐이라고 발뺌하고 있지 않나? 쉽게 취재하고 편하게쓰기위해 네티즌의 글을 인용하고 있지는 않나?
가상공간이라는 미디어, 네티즌이라는 보이지 않는 취재원과 마주설 때도 기자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정직한 수문장이 되어야 한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엔 온갖 정보가 떠다닌다. 정보의 장외시장에서나 거래될 만한 믿기 어려운 소문들도 있다. 인신공격적인 의견들이 정보 행세를 하기도 한다. 종말처리장으로 가야 할 배설된 언어들도 부유물처럼 떠 있다.
정보의 보고 인터넷은 오보의 원천, 명예훼손의 덫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