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선언 내용 너무 구체적, 놀랐다"

남북 정상회담 청와대 공동취재단 특별좌담



   
 
  ▲ 본보는 8일 청와대 인근 한 식당에서 남북 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좌담회를 열었다.  
 
한반도 평화·번영 위해 정파적 이해관계 버려야
北, 南언론 불신 생각보다 깊어…꾸준한 교류 절감



2007 남북 정상회담이 끝났다. 동시에 열띤 취재 경쟁도 사그라졌다. 이제 언론들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냉정하게 점검하고 있다. 물론 정상회담 뒷얘기나 방북기, 특별기고 등을 실어 정상회담의 여운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2007 남북 정상회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본지는 이번 정상회담 기간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기자 5명과 좌담회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 성과, 현지 취재 환경, 취재 뒷얘기 등을 들었다.

◇좌담회 참가자(가나다순)
서양원 매일경제 기자, 성기홍 연합뉴스 기자, 신승근 한겨레 기자, 조수진 동아일보 기자, 조재익 KBS 기자, 사회=본보 김신용 편집국장


사회=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평가한다.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 성기홍 연합뉴스 기자  
 
성기홍=여러 분야에서 구체적인 합의 사항이 나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비교하면 그 점이 분명하다. 6·15 공동선언은 이산가족 문제와 남북 간 교류문제를 총론적으로 뭉뚱그렸다. 이번 선언은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등 구체 항목에 합의했다. 또 6·15 선언이 정상간 합의 내용에 대해 시기와 대상을 분명하게 적시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11월 총리회담, 국방장관 회담, 경추위 부총리급 격상 등 후속조치를 남북대화의 스케줄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

서양원=6·15 보다 진전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경협 부분의 경우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조기에 착수키로 하고, 해주와 주변지역을 묶는 서해협력특별지대 추진도 의미 있다. 특히 한강 하구 모래 공동 채취는 남북이 윈윈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북한 바닷모래는 약 3조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모래 채취 자금을 개성~평양 고속도로 확장이나 개성~신의주 철도 연결에 충당하면 일방적 퍼주기라는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 조재익 KBS 기자  
 
조재익=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종전협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나온 점에 주목하고 싶다. 3자 또는 4자 회담 추진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것은 앞으로 군사적 대치관계를 해소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로 읽혀진다.

신승근=2007 남북정상선언의 명칭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여기에 이번 성과가 다 녹아있다. 그동안 남북 간 대화가 화해협력이라는 다소 추상적 문구였다면 이번에는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해서 양쪽이 공동 번영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대북 적대정책을 추진했던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해 적극성을 갖기 시작했다. 남한도 동의했고 북한도 모처럼 조성된 국제정세를 타겠다는 입장이다. 남북이 민족 운명을 공동으로 개척하기로 합의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조수진=남북정상선언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사실 놀랐다. 이번 선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종전선언이다. 3~4자 관련국을 명시해 더욱 구체적이다. 국민의 지지도가 보여주고 있듯이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회=들어보니 남북 정상간 구체적 합의가 있었고 의미도 상당한 것 같다. 이런 성과를 지속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나 조치가 있어야 하나.

성기홍=많은 국민들은 정상선언이 차기정부에서도 담보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정상선언의 국민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장 경협에 들어가는 돈 문제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재정규모와 방식에 대해 분명하고 투명하게 제시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정치권도 대선 일정 등이 있지만 국회에서 충실하게 논의해야 한다. 더불어 종전선언 관련 당사국인 중국이나 미국에 대한 충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 서양원 매일경제 기자  
 
서양원=남북 정상간 합의는 꼭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남측 입장에서는 국민의 동의,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 경제협력 분야는 돈이 들어가는 문제, 국민의 세금에 관련된 현안이다. 경협 과제 등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그 방법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울러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 프로젝트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야한다. 특히 국제사회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한이 비핵화 문제만 해결한다면 북미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보상자금을 받을 수 있고, 그 자금을 북한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도 그 환경에 맞춰 투자할 수 있고, 국제금융시장의 많은 부동자금도 북한으로 몰릴 수 있다.

조재익=지금까지 국내에서 남북문제에 관한한 일치된 공감대는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남북관계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바라보며 정쟁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측면이 강했다. 남북정상선언은 남북이 7년 만에 어렵게 성사해서 이룬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합의를 이룬 쪽도, 합의를 바라보는 쪽도 이해관계를 던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가적 문제로 바라보고 어떻게 뒷받침할 것이냐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정파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번 합의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해 지원할 것이 있으면 지원하자.

신승근=한반도 문제는 우리만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처럼 몇 년 만의 기회가 왔다.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인 입장에서 당장 북한 투자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단기적으로 손해가 나거나 당장 이익이 없어도 나서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도 정파를 떠나 민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 조수진 동아일보 기자  
 
조수진=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주안점을 뒀던 분야는 경제협력이었다. 북한이 이렇게 세부적 합의에 동의한 것도 경제난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남북이 더 친해지려면 경제문제로 접근하면 된다. 그러려면 기업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 투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관련 법률 정비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선 후보의 스탠스가 궁금하다. 지금까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는 비판을 떨치기 어렵다. 이번 합의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타당성 있는 조사가 되고, 객관화될 수 있는 통계를 가지고 정말 저래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청와대 풀기자단이 똑같은 내용을 취재 했지만 다음날 보도된 기사나 사진을 보면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왜곡을 하거나 이상하게 비틀어서 비판하는 보도가 있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가.

성기홍=어떤 사건이나 이벤트를 취재해도 신문, 언론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 동일한 시각의 기사가 천편일률적으로 나오기 힘들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취재기자 입장에서 보면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정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평양 정보라는 것이 굉장히 접근하기 어려웠다. 김 위원장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평양 기자보다 서울 기자들이 더 많이 입체적으로 아는 역설적 상황이 됐다. 평양 프레스센터에서 제공하는 기사 양 자체가 서울에서 요구하는 기대치보다 현저히 낮았다. 서울에 있는 각 신문, 방송사들은 알고 싶은 정보가 있고, 평양에서 내려오는 정보는 제한돼 있고 그런 갭을 어떻게 메우나. 결국 신문, 방송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북한에 대한 정보를 활용했다. 2000년 정상회담과의 비교, 김 위원장에 대한 건강, 의전과 영접 차이 등을 보도한 것이 그 예다.

조수진=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평양공동취재단에 대한 여러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방어하고 싶다. 공동취재단은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기자로서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했다. 남측과 통화할 수 있는 길도 없었다. 북한 현지에서 취재를 가더라도 교통이나 통신 사정에 발이 묶여 제대로 기사를 쓰지 못했다. 마감은 다가오고 북쪽에서 기사는 안 들어오고, 그래서 TV를 통해 기사를 만든 불가피성이 있지 않았나 싶다. 정상회담이 정례화 되고 남북 교류가 많아지더라도 통신이나 취재 접근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신승근 한겨레 기자  
 
신승근=우리 내부의 경쟁구도와 관계가 있다. 일종의 에피소드인데, 남북정상이 4일 오후 1시에 합의문에 서명한다는 KBS 보도가 있었다. 몇몇 기자들이 그전에 알고 있었지만 쓰지 않기로 돼 있었고, 쓴다고 해도 남쪽으로 알릴 방법과 수단이 없었다. KBS가 어떻게 보도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방송협회장 자격으로 온 정연주 KBS 사장이 자기가 아는 라인을 통해 남쪽으로 보냈지 않았느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합뉴스가 썼더라.

서양원=각 신문의 색깔이 이번 정상회담 보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도에 대한 평가는 독자가 하는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졌고 면수 할애도 부족했지만 구체적 현안은 잘 보도했다고 본다.

조재익=공동취재단은 평양 방문에 앞서 민족 화해에 기여하는 팩트만 기사화한다는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신문과 방송이 팩트를 취사선택하면서 보도가 확 달라졌다. 각 신문에서 보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반영했다. 그것에 대한 판단, 역사에 대한 평가는 독자와 국민들 몫이다.

신승근=정권에 대한 호불호로 보고 색안경을 끼고 본 측면이 있지 않은가 싶다. 대표적인 것이 3일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4일 양 정상이 공동선언 형태로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고, 노 대통령도 상당 부분 만족스럽게 진행됐다고 코멘트했다. 그러나 다음날 보도는 그 부분을 부각하지 않고 부정적 기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더라. 팩트 전달 차원이 아니라 정권에 대한 호불호로 민족 문제를 보지 않는가 하는 자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언론자유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본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남북정상 공동선언 합의 보다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연장 요청을 1면 머리기사로 뽑았다. 독자의 몫이요, 독자의 판단에 맡기라고 말하는데 독자들은 가르침을 당하기도 한다. 신문을 계속 보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충성 독자의 경우 그 신문에 대해 맹신한다. 독자의 몫이라고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사회=북측기자들도 풀단을 구성해 취재했나.

신승근=북측 기자풀단은 대략 남측 기자풀단의 3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가령 카퍼레이드 장면만 봐도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투입됐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방송된 것과 조선중앙TV에서 방송한 퍼레이드 장면은 확연히 달랐다. 조선중앙TV는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평양 시내 카퍼레이드 장면을 육교와 건물 등에서 입체적으로 잡았다. 장엄하다고 느껴졌다.

사회=아직 언론분야 교류는 미미하다. 이번 공동선언문에서도 언론분야는 빠졌다. 실질적 언론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 달라.

서양원=분야별 회담의 하나인 사회문화 분야 회담을 취재하면서 남측 언론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환 신문협회장은 평양 상주특파원 파견, 평양 프레스센터 건립, 북 언론사 경영진 남한 초청, 남북 기자 교류, 언론 담당자 상호교류 확대 등 언론 관련 12가지 의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북측 언론담당 책임자는 “남측 언론보도가 너무 편파적이다. 반북기사가 너무 많다. 일부 신문은 꼴통보수”라며 비판했다. 남북의 언론에 대한 인식차가 너무 컸다. 얘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격해졌지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남측에 와서 언론 상황을 봐라. 보고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언론 교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성기홍=한국기자협회서 정한 남북 언론교류 과제들이 많다. 하나하나 실현하려면 지난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주의 북한 입장에서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리는 언론교류는 제일 마지막에 하고 싶은 분야일 것이다. 만찬장에서 조선기자동맹 관계자와 환담하면서 연합통신과 조선중앙통신 교류에 대한 얘기를 꺼냈더니 그것은 윗분이 결정할 문제라고 정색을 하더라. 일상적인 수준에서 만남과 대화를 축척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서양원=북측은 동독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것은 언론개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측은 동독의 경험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불안하게 느낀다. 남북 언론교류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우호관계를 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조수진=북측 기자들에게 남쪽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는 것이 좋겠다. 갈 길은 멀지만 그런 작업들이 있어야 한다. 평양특파원 상주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과정까지 접촉면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승근=언론교류는 남북 간 이해의 폭을 좁히는 중요한 요소다. 언론사 자체 노력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 언론교류의 과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기자협회도 상주특파원 교류문제, 언론사 상호간 파트너십 형성 등에 대해 노력해달라.

조재익=남북기자 접촉이나 교류 다 좋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북측 조선기자동맹이 자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합의 사항도 상부에 보고해서 허가 받아야 하는 체제다. 교류활동은 계속해야 하지만 당분간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회=오랜 시간 토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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