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평·만화를 살리자

1909년 6월 2일. 우리나라 신문에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활자로만 메워지는 신문에 삽화가 등장한 것이다. 대한민보 창간호에 게재된 이도영의 삽화는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효시로 불린다.

그로부터 1백년. 내년이면 ‘촌철살인’의 대명사 시사만평이 1백세를 맞는다. 시사만화는 일제 강점기에 태생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국민의 참혹한 마음을 한편의 그림이 어루만져주곤 했다. 하지만 일제(日帝)에 시사만화는 눈엣가시였다. 일제는 저항만평을 폭압했다.

시사만화는 한국에 독재권력이 횡행하면서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저항만화를 통해 국민들은 독재치하 답답함과 억울함을 달랬다. 어떤 신문은 지면 1면에 만평을 실어 저항했고 그외 대부분의 신문들도 만평을 통해 국민과 은밀한 대화를 했다.

그만큼 시사만화는 일제강점기와 독재권력기를 거치면서 국민에는 친구같은 존재였다. 국민은 ‘권력 비판과 저항’이라는 시사만화의 유전자를 사랑했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어느새 신문에서 시사만평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 시사만화 관련 논문에 따르면 지방지 69종 중 절반 가량의 신문이 시사만평을 없앤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지의 경우도 만평과 네 칸 만화를 모두 다루다가 지금은 둘 중하 나만 선택하는가 하면, 문화일보와 세계일보에서는 아예 시사만화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신문사들의 시사만화에 대한 ‘홀대’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시사만화를 태생시켰던 언론이, 스스로 시사만평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시사만화가들은 생계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신문에서 설땅을 잃은 일부 시사만화가들은 동화책 삽화그리기, 단행본 출간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더 심각한 것은 시사만화 지망생들의 허탈함이다. 그들은 ‘저항과 비판’이라는 유전자를 버리고 상업만화에 대한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사만화의 쇠퇴의 이유로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든다. 시사만평 유전자의 주요 구성요소가 ‘저항’이었는데, 그 투쟁대상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화의 성숙도는 촌철살인의 만평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을 점차 식게했다.

한국언론재단의 ‘2006 언론수용자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만화나 만평에 대한 열독도는 평균 2.16. 사회(2.90), 스포츠·연예(2.87)는 물론이고 일기예보(2.27)에 까지 뒤진 초라한 성적이다. 1980, 90년대만 해도 5위안의 상위권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료신문’ 인터넷의 등장도 시사만화를 쇠퇴시키는 배경이 됐고 신문사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무한경쟁’도 시사만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돈이 안되면 정리해버리는 자본의 속성이 신문업계에 횡행하는 세태가 시사만화가의 의욕을 꺾고 있다.

그렇다면 시사만화를 이대로 둘 것인가. 세태의 물결에 시사만화와의 끈을 놓아버려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분명히 ‘아니다’는 해답을 알고 있다. 다만 직시하려들지 않을 뿐이다.

지난해 5월부터 한국 시사만화 1백주년 기념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대결각을 세웠던 만화가들도 마음을 함께했고 신·구 세대도 뭉쳤다. ‘우리의 위기를 우리가 돌파한다’는 위기감과 비장함이 서려있다. 하지만 시사만화는 그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시사만화는 1백년간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이었던 만큼, 그 생사는 독자도 함께 해야할 의무가 있다.

독재권력이 사라졌다고 해도 정치권의 부조리가 사라지기는 요원하다. 정치권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정치권력을 비웃을 정도로 커져버린 경제권력, 재벌권력, 여기에 집단권력인 ‘종교권력’과 ‘언론권력’. 시사만평의 ‘저항과 비판의 유전자’는 앞으로 더 뛰어야한다. 시사만화가 그 역할을 모두 하지는 않지만, 비판의 선봉대가 만평이 돼야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1백살이 되는 시사만화. 그의 미래에 대해 언론과 독자가 함께 머리를 맞댈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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