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성폭력 근절 때까지 싸우겠다"

KBS 시사기획 쌈 정재용 기자

/ 성역에 도전하는 기자들 /  스포츠 성폭력 근절 -  KBS 시사기획 쌈 정재용 기자

편집자 주 * 우리 사회에는 아직 성역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정치권력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에 가려져있던 다양한 성역이 드러났다. 개혁의 물결이 뒤따랐지만 스포츠계, 종교계 등의 일부 분야는 굳건하다. 그러나 성역이 있는 곳에 기자가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보도로 화제를 부른 KBS의 정재용 기자, MBC의 성장경, 이재훈 기자를 만나봤다.



   
 
  ▲ KBS 시사기획 쌈 정재용 기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한뜻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던 그날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꿈은 아들의 꿈이 됐다. 그러나 아들의 꿈 역시 무자비한 폭력 앞에 산산이 부서졌다. 고대하던 축구부의 유니폼을 입은 기쁨도 잠시. 돌아온 것은 감독과 선배의 몽둥이질이었다. 짓이겨진 허벅지를 바라보며 아들은 다른 꿈을 꾸었다. 이 모순된 스포츠계를 바로 잡고 말리라. 그는 자라 기자가 되었다. KBS 정재용 기자가 바로 그다.

정 기자의 연출로 KBS 시사기획 쌈이 11일 방송한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는 충격을 일으켰다. 스포츠계에서 성폭력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벌어지는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각 종목의 꿈나무들은 싹이 피기도 전에 짓밟히고 있었다.

정 기자는 처음에는 학원 스포츠계의 폭력에 접근했다. 성폭력은 그 가운데 하나로 다룰 생각이었다. 그러나 취재하면 할수록 당황스러웠다. “예전부터 학교 스포츠 내에 성폭력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정신나간 한두명의 짓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취재를 해보니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더군요.” 애초 기획을 바꿔 성폭력을 정면으로 다루기로 결심했다. 보도가 나간 뒤 정부와 대한체육회 등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권보고서’에 좋은 반응만 있지는 않았다. 일부는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근절과 선의의 피해자 보호, 두 가지 가치가 부딪혔습니다. 스포츠계 성폭력을 이대로 놔둔다면 한국 스포츠계의 존재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짧게는 충격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긍정의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죠.”

선정성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근절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다. 결국 해법은 단기적으로는 합숙제도 폐지, 장기적으로는 한국 스포츠 시스템의 변혁이다. 공부와 운동을 단절시키는 엘리트 위주의 스포츠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포츠계는 성역 아닌 성역이다. 역대 국가권력은 스포츠를 이용해 대중을 조작했다. 6.10민주화 운동 뒤에도 스포츠계만은 개발독재 시대 그대로다. 스포츠를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았고, 피해자인 체육인들조차 변혁의 동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 기자는 스포츠계 변혁에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와 경기 결과 위주의 보도에서 벗어나 구조적인 문제를 심층 해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주도한 쌈의 ‘스포츠 변혁 프로젝트’ 시리즈는 그런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스포츠계의 변혁이 제가 스포츠 기자를 하는 이유입니다. 하루바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 뒤 저는 백발이 될 때까지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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