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통위원장 자진사퇴가 답이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계의 우려를 결국 현실로 만들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닌 ‘최측근 중의 최측근’인 최시중씨를 지난 2일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명실상부한 ‘형님 내각’의 탄생이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의 박탈, 무소불위의 방송계 인사권 행사, 나아가 향후 미디어 시장의 재편에 대한 칼자루를 몽땅 쥐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승자독식제의 당연한 결과인가, 아니면 국민의 뜻과 소통을 거부한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의 절정인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보여주는 이러한 정권 말기적 현상은 ‘실용의 가면’ 뒤에 숨어서 자신과 수구기득권 세력의 잇속만을 챙기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도대체 문제를 어디에서부터 지적해야 하는지 갈피가 안 잡힐 정도다.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는 어지간한 부처 2~3개를 합한 것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진 권력기구다.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등 이사 선임권을 가질 뿐 아니라 문화방송(MBC)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의 임명권을 갖는다. 또한 방송 인허가 등 방송에 대한 감독과 규제, 방송 정책, 통신 관련 각종 정책의 생산 및 집행에 대한 엄청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런 자리에 ‘대통령의 형님’ 최씨가 앉게 됐다.

우리는 진심으로 이명박 정부가 방송과 통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깨트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최씨 역시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평생 독립성과 객관성, 중립성을 강조하는 직업인으로 살아왔다”면서 “방송 독립성 문제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변했다 한다.

그러나 한 번 따져보자.
과연 20여년전 동아일보 신문 기자가 언론인의 마지막 경력이었던 최씨가 첨단 미디어를 지향하는 방송과 통신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나, 아니면 ‘6인회의‘의 핵심 멤버로서 이명박 정부의 정치파워게임의 핵심에 자리잡았던 최씨가 이명박 정부의 의도와 별개로 국민 여론을 수렴할만한 정치적 독립성을 갖고 있겠나, 그것도 아니면 반드시 본인이 방통위원장으로서 해야할 과제가 있나.

스스로 전문성 부족을 인정한 최씨의 말대로 전문가를 기용한다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도 쉬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새로운 용어와 하이-엔드 기술 개념들이 오가는 정보통신을 총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저 이명박 대통령 혹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해관계를 반영할 세력들의 의중을 그대로 따라하는 꼭두각시, 혹은 적극적 집행자에 그칠까 근심하는 목소리가 극심함을 잘 살펴야할 것이다.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는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수없이 역설해 왔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 최씨를 방통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하나의 수순에 불과하다. 방송 장악 의도는 대선 직전, 직후부터 본격화 됐다. 우려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신여권인 한나라당은 이미 방송장악 의도를 여과없이 반영시킨 법안을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숱한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위원장 등 위원 2명을 직접 임명하고 국회에서 3명의 위원 선임권을 나눠먹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 아니라 ‘대통령 예속’이라는 비아냥과 비판의 날이 시퍼렇다.

문제는 ‘최시중’이 아니다. 국회가 수많은 언론 관련 단체를 비롯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방통위법에 대한 제·개정 논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오는 11일 국회는 최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 의결을 하게 된다.
정중하면서도 진심으로 최 내정자에게 부탁드린다.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자신과 이명박 정부, 여당을 위해 모두 올바를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형님‘답게 전면에서 정치를 하면서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어떨까.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모 인사, 모 인사를 방통위원의 야당 몫으로 내정했다는 소문까지 들려오고 있다. 나눠 먹기식으로 최씨에 대한 임명동의를 통과시킨다면 야당 역시 국민의 매서운 비판의 창 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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