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기자들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4.30 14:07:08
청와대와 출입 기자들을 둘러싸고 요즘 말들이 많다. 우선 청와대는 ‘프레스 프렌들리(press-friendly)’를 외치고 있으나 마땅히 해야 할 정례 브리핑도 제대로 안하는 등 전반적인 취재 지원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자들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대응해야 할 터인데 최근 기자단의 YTN 돌발영상 파문과 함께 대통령 미국 순방 당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요구 논란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기자단에서 청와대가 요구하는 엠바고 사안을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수용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
국가안보에 직결된 외교문제나 대통령의 신변안전과 같은 내용이 아닌 경우(물론 이 경우도 청와대의 그럴싸한 포장이 과연 그러한지 꼼꼼히 숙고해야한다) 엠바고나 비보도 요청을 그대로 수용하면 국가나 정부 입맛에 따라 가공된 정보만 전달할 수 있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실수로 유출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녹취록의 경우에서 감추려고 하는 권력의 생리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녹취록은 청와대에서 보도가 되면 시장질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비보도를 기자들에게 요구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한 온라인 매체가 보도를 한 터라 애초 설득력이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청와대 기자들은 어정쩡하게 “그러면 책임있는 금융당국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보도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자가 나오기는커녕 이동관 대변인이 나와 기사 밸류(value)에 있어서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얘기를 왜 보도하려느냐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이 언제부터 책임있는 금융당국자가 됐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기사밸류까지 친절히(?) 제시해준 이 대변인의 말에 기사를 내보내려는 해당 기자가 역으로 보도돼도 무방할 얘기를 왜 굳이 말리려 하느냐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쯤되면 정보공개를 둘러싼 싸움의 승패는 누가봐도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24시간 촌각을 다투는 시기에 벌써 하루를 묵힌 뒤였다. 어찌보면 일선 기자의 얘기처럼 “굴러들어온 밥그릇”을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더구나 녹취록에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규제완화와 이대통령의 친재벌 성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의 단초가 담겨있어 향후 우리경제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특히 산업은행 민영화나 금산분리완화, 금융산업 구조조정같은 민감한 사안이 기사거리가 안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 보도가 돼야할 사안이었고 보도여부는 청와대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각 사가 충분한 양식을 가지고 판단해 보도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전 참여정부에서 기자실 개편시 국민의 알권리를 운운하며 정보접근권을 차단하는 ‘대못’을 뽑겠다는 그 가상한 정신은 어디에 갔는지 궁금하게 한 사건이었다.
청와대는 ‘프레스 프렌들리’를 실천하고 기자들은 정언유착이 아닌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힘써야한다. 기자로서 항상 국익에 관한 일차적 판단은 청와대나 심지어 기자단 자체가 아닌 국민입장에서 판단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의 나팔수 역할밖에 더할 나위가 없다.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생각하고 각 사별로도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기자단 차원에서 먼저 국익을 판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관변’ 언론 냄새가 난다.
대통령이 꺼리고 싫어하는 기자가 될 수록 그에 비례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자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말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