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추·천·작] 뮤지컬<의형제>
쌍둥이 형제 통해 본 질곡의 현대사
김수현 | 입력
2000.11.19 19:14:42
김수현 SBS 문화부기자
볼만한 연극을 소개해 달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었다. 명색이 공연 담당 기자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최근에 연극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었다. 기자 되고 나서 확실히 아는 게 있다면, 몰라도 아는 척, 안 봐도 본 척 하는 실력(?)이라지만, 이 원고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김민기 씨의 뮤지컬 ‘의형제’<사진>가 이런 나를 구원해줬다.
나는 뮤지컬 ‘의형제’를 2년 전에 봤다. 문화부로 발령 받고 나서 처음 관람한 공연이었다. ‘의형제’는 기구한 운명의 쌍둥이 형제 얘기다. 서로 쌍둥이 형제라는 것을 모른 채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 두 사람의 만남과 우정, 애증과 비극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리타 길들이기’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윌리 러셀’의 작품이 원작이다. 하지만 김민기 씨의 번안은 이 작품에서 ‘빠다 냄새’를 완전히 걷어냈다. 원작의 배경인 1970년대 영국 리버풀은, 한국전쟁부터 1979년 유신 말기까지의 서울과 부산으로 바뀐다.
쌍둥이 형제의 어린 시절. 부산의 피난촌을 생생하게 재현한 무대. 찢어진 옷에 시커먼 숯검댕을 잔뜩 묻힌 아이들은 맨발로 천방지축 찧고 까분다. 깨진 바가지를 철모 삼아 벌이는 전쟁놀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몰래 보다 경찰에게 끌려나오는 주인공들. 이 뮤지컬의 백미는 폭소와 함께 향수를 부르는 이런 장면들이다.
뮤지컬은 이후 서울로 무대를 옮기면서 서서히 비극으로 치닫는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의형제’를 맺은 주인공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서로 적이 되고 만다. 편한 마음으로는 되돌아볼 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이들의 삶에 얽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았나 봐요”
뮤지컬을 보고 나서 내가 건넨 말에, 김민기 씨는 씩 웃고는 덧붙였다.
“아이고, 엉망이에요”
뮤지컬 ‘의형제’는 최근 다시 무대에 올랐다. 나는 곧 이 뮤지컬을 다시 보러 갈 생각이다. 뮤지컬이 2년 만에 얼마나 자랐는지, 김민기 씨는 아직도 ‘엉망’이라고 할지 궁금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엉망’이던 이 뮤지컬은 초연 당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었다.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12월 31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