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수신문' 국민 우롱하지 말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파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이 문제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우리 식탁 위에 혹시라도 광우병이 걸린 쇠고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하는 안전성이 핵심 관건인 것이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여권 일각에서 우려하듯이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권이든 야권이든,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이념적 지향을 떠나서,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의 급식을 통해 먹을 수 있는 쇠고기의 안전성을 담보해 달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불과 1년 전 자신들이 야당이던 시절,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수입협상을 할 때 이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삼고 우리 식탁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점이 있으면 수입할 수 없다고 못 박았던 것이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막상 집권을 하자 1백80도로 안면을 바꿨다.

미국산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될 확률은 백만분의 1도 안된다느니, 비오는 날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느니 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만을 무뇌아처럼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확산된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일부 좌파 세력의 선동에 따른 것이라며, 또 다시 양치기 소년처럼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고 있다. 한국인 유전자가 광우병에 가장 취약하다는 분석결과 등 광우병의 위험을 지적하는 과학적 증거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왜 과거와 달리 입장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해명도 없다. 사실 국민들은 바로 이 점이 궁금한 것이다.

현 정부나 여당이 과거와 달리 입장을 바꿀 때 자신들이 설득당할 분명하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었다면, 여전히 과거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그 근거를 대고 설득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수 국민들의 요구대로 미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우리 식탁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여권도 여권이지만 일부 보수 신문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이들 보수 신문 역시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미국과 당당한 협상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1백80도로 입장을 바꿔, 국민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사들을 오히려 좌파 집단의 선동기구 쯤으로 매도하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의 경우 방송사들이 쇠고기 문제를 집중 보도하는 배경에는 방송법 개정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억지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위기에 몰린 여권을 옹호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방송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번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방송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권이 달린 중대한 문제를 이용해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이 지경에 이르면, 이들 신문에 대해 더 이상 언론이라 일컬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지금 누가 누구에게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부와 여당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1백%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국민들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한지 석 달도 안 돼 민심이반 현상에 직면한 것은 좌파의 선동이나 국민들의 판단력 부재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당시의 높은 지지율만 믿고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현 정부와 여당에게 문제의 근원이 있는 것이다. 이를 도외시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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