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현장엔 '아고라'가 있다
의제설정기능 상실한 신문 대신 인터넷매체 급부상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 입력
2008.06.11 15:05:43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87년 6월 항쟁은 신문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1년이 흐른 2008년 6월 촛불집회 현장에선 인터넷 미디어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장비로 무장된 네티즌들이 현장 분위기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기성 언론의 역할을 뛰어넘고 있다. 그만큼 미디어지형도 시대 흐름과 함께 급변했다.
게다가 신문들은 이념으로 나뉘면서 일부 신문들의 의제설정 기능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고, 급기야 구독거부운동과 광고게재기업 불매운동 등 역풍을 맞고 있다.
1인 미디어 대두
과거 집회 현장엔 ‘민주화 투사들’이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하면, 축제의 장이 돼버린 촛불집회 현장은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을 밝히면서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선 시민 스스로가 미디어가 됐다.
한국경제 최진순 기자는 “80년대(20세기)는 주류 언론이 정보를 독점, 선별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시민과 미디어가 소통의 창구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2008년 6월은 인터넷과 같은 쌍방향 미디어들이 정보를 다양하게 편재하면서 시민 스스로 미디어가 됐고 심지어 시민들이 전통 매체를 조정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통매체의 영향력 하락은 미디어 발전뿐만 아니라 기존 매체의 신뢰 하락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촛불집회와 관련, 시장지배력을 지닌 일부 신문들은 연일 음모론과 배후론 등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무엇보다 쇠고기 파동을 당파적으로 접근, 1년 전과 전혀 다른 보도를 하면서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중론이다.
여론 메카 ‘아고라’
쇠고기 파동과 관련 여론은 대부분 ‘다음 아고라’와 블로그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 여론 메카로 아고라나 블로그가 부상한 것.
더구나 ‘조중동’ 구독거부운동을 비롯해 경향ㆍ한겨레 자발적인 구독신청과 격려광고 운동 등도 여기에서 진행된다.
또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 디지털 기기로 무장된 시민들이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도할 뿐만 아니라 감시자와 전문가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전통 매체의 일방적인 보도에 대해 ‘반박의 힘’을 갖추게 된 것.
한 기자는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미디어지형이 크게 바꿨고 그 중 하나는 신문의 의제설정기능이 상실됐다는 점”이라며 “나중엔 신문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일보 한 중견 기자는 “과거엔 신문이 민주주의 수호기능을 했지만 현재는 미디어지형이 많이 달라졌다”며 “특히 이달 들어 보수신문 간에도 논조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줬고 이는 향후 생존 여부를 판가름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