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방송을 정권홍보 도구로 만드려는 것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6.18 12:51:09
정연주 KBS 사장이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았다. 공영방송의 현직 사장으로서 검찰에 불려가는 것은 정 사장이 처음일 것이다. 더욱이 개인적인 비리도 아니고 현직에 있으면서 수행한 업무상의 이유로 검찰조사를 받는 것은 외국에서도 극히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정 사장에 대한 검찰조사에 앞서 감사원은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결정했고, 국세청은 KBS 외주제작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KBS 이사회 김금수 전 의장이 정연주 사장을 교체하라는 외부의 압력을 못견뎌 돌연 사퇴했다.
사실 현 정부와 여당은 집권 이후 정연주 사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퇴진압력을 가해왔다. 참여정부 하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기관장들의 일괄사퇴를 강요하면서 정 사장을 꼭 찍어서 일순위로 거론한 것이다. 그런데 정 사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정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정부 차원의 합법적, 비합법적 조직이 총동원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다. KBS의 보도 논조를 친정부적인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최근 친정부적인 KBS 이사회 이사들이 보도내용을 문제 삼아 정연주 사장이 임명한 이일화 보도본부장에 대한 사퇴를 압박하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한 이들이 그 칼끝을 정연주 사장에게 돌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정 사장의 후임 인사가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KBS 뿐만이 아니다. 현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는 집권한지 4개월이 채 안 돼 성사단계에 이르렀다. YTN 사장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캠프의 방송담당 특보를 지낸 구본홍씨가 내정됐고, 아리랑 TV 사장 역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담당 특보를 지낸 정국록씨가 임명됐다.
방송사의 광고권을 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담당 특보를 지낸 양휘부씨가 임명됐다. MBC는 민영화를 추진해 보수언론과 재벌의 컨소시엄에 넘길 계획이다. KBS 사장만 교체하면 바야흐로 모든 방송이 한목소리로 현 정부를 찬양할 것이다.
이 거대한 작업의 배후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당정 협의회에 나보란 듯이 참석하는 등 안하무인 식의 행보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초반 서동구씨를 KBS 사장에 임명하자 한나라당과 조중동 보수 언론은 사생결단을 하고 반대했다.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의 사장에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캠프에 있던 인사들을 노골적으로 낙하산 투하하고, 조중동은 동조성 보도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국민적 지지를 받자 국민과의 ‘소통이 잘못됐다’며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쇄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 원인이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방송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방송을 친여 인사들로 교체해 조중동과 같은 목소리를 내게 하면 자신과 소통이 잘될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방송을 정권 차원의 선전 도구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국민들이 사는 세상은 21세기인데, 최고 통치자의 생각은 7,80년대 군사정부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방송마저 장악해 그야말로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리려 하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가장 짧은 기간에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자신에 대한 방송의 비판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의 건전한 비판을 새겨듣지 못하는 대통령 자신 때문임을 직시해야 한다.